6·15 공동선언의 의의
올해로 탈냉전 시대를 맞은 지 20년이 된다. 20년 전, 동유럽이 붕괴되고 소련이 해체되었으며 독일이 통일을 이루었다. 이 어간에 동북아시아 지역에서는 한국과 소련 그리고 한국과 중국의 수교가 이루어 졌다. 과거에 서로 적대국이고 공산주의의 종주국이었던 나라와 국교를 정상화한 것이다. 따라서 1990년대가 세계 차원에서 냉전의 종언을 고했다면, 2000년 6월은 한반도에서 탈냉전이 이루어졌고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6.15 공동선언이다.
6.15 공동선언은 탈냉전 이후 남북의 정상이 최초로 만나 통일의 기본적인 방안과 경제협력 등을 합의한 역사적인 합의다. 또한 이것은 1972년 이후락, 김영주의 '7.4 공동성명'과 1991년 정원식, 연형묵의 '남북기본합의서'의 정신을 계승하였다. 이제 그 선언이 10주년을 맞게 되었다.
6.15 공동선언은 일반인들에게는 다소 생소할 수 있다. 6.15 공동선언의 여러 가지 의의 중에서 몇 가지만 꼽아 보겠다. 첫째로 합의형 통일을 지향하고 있다. 6.15 공동선언은 무력이나, 흡수, 신탁, 합병 등의 통일이 아닌 남북 간 상호 대화를 통하여 평화적인 통일을 이룬다는 것이다. 둘째, 단계적이고 점진적인 통일을 추구한다. 과거 북한이 주장했던 정치적 결단에 의한 통일이 아니라 통일의 과정을 비교적 길게 상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화해 협력을 통해 상호간의 신뢰를 도모하고 나아가서는 남북연합 단계, 자치 정부의 권한 보장, 그리고 평화통일 등의 구체적인 로드맵을 제시하고 있다. 이것은 예멘의 사례와 같이 통일의 과정에서 돌발적인 사태나 시행착오를 방지하고 원만하게 통일을 이루고자 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궁극에는 자유민주의 통일을 이루는 것이다. 1991년 김일성은 ‘남과 북이 누가 누구를 먹고 먹히는 통일’이 아니라 평화적인 통일을 이루되, ‘제도의 통일은 후대에 맡기자’고 하였다. 그러나 6.15 공선언선은 제도적 통일을 자유민주주의 통일로 못 박고 있다고 하겠다.
논란이 있었던 6.15 공동선언 제 2항은, 결코 북한이 주장하는 급격한 통일이나 연방제 통일을 이루려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1990년 이후 탈냉전이라는 시대적 변화와 함께 북한 내부의 정치, 경제적 상황 등 여러 가지 여건을 고려한다면, 남한의 국가연합제에 근접한 통일 방식에 동의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따라서 이 모두를 종합해 보건대 결국은 자유민주주의 통일로 귀결된다. 6.15 공동선언의 내용과 취지를 간략히 짚어 보면 다음과 같다.
전문을 생략하고,
1.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가기로 하였다.
6.15 공동선언은 자주적 통일의 원칙, 통일방안에 대한 기본적인 차원에서의 공통점 인정, 남북간의 인도적 문제 해결, 경제협력과 사회문화교류, 당국간 대화의 제도화 그리고 김정일의 답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선 자주적 통일(우리민족끼리)에 대해 논란이 있는데, 이는 미국과 소련을 비롯하여 남북한이 극한 대립을 하던 이른바 냉전시대의 네가티브적이고 배타적인 ‘자주’가 아니라 1990년 이후 탈냉전 시대에 걸맞은 포지티브하고 국제협력을 배재하지 않는 ‘자주’를 말하는 것이다. 특히 한반도 주변 국가들과의 협력을 통한 자주적 통일을 천명한 것이므로 7.4 공동선언보다 진일보한 것이라 하겠다.
2.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하였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6.15 공동선언 2항이 가장 큰 오해와 논란을 불러 일으켰는데, 기본적으로 우리의 국가연합제에 더 가까운 통일 방안임에 틀림없다. 북한은 1990년 이후 과거 경직된 연방제에서 유연한 태도를 보였고, 또 자치정부의 권한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입장으로 선회하였다. 그래서 연방제라고 하면 과거의 주한미군 철수, 보안법 철폐, 한반도의 중립화로 적화통일의 길을 열어 주었다는 논리는 기우이거나 이해의 부족이다. 그리고 오늘날과 같은 탈냉전, 글로벌이라는 국제정치 속에서 공산주의로 적화통일을 이룬다는 것은 넌센스에 가깝다. 또 연방제를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경우가 있는데, 연방제 국가의 대표적인 나라가 미국이다.
북한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를 간단히 설명할 수는 없다. 대략적으로는, 남북한 자치정부의 권한을 강화하고, 일정 기간 두 체제를 인정하자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과거 고려연방제에서 정치적 결단에 의한 비교적 빠른 시일에 이루는 통일보다는 오히려 점진적인 통일로 입장을 바꾼 것으로 이해 할 수 있다. 그만큼 북한이 수세적인 입장에 놓여 있다. 그리고 우리의 ‘국가연합제안’은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대통령 시절의 통일을 방안을 계승하였고, 특히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을 중시하고 있다. 때문에 현 정부도 이렇게 역사적으로 이어온 통일방안을 존중하고 계승하고 있다.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은 3단계로써 1단계 화해·협력단계, 2단계 남북연합단계, 3단계 1민족 1국가 통일국가 완성단계이다. 이명박 정부는 이를 계승하고 있다. ( 이승만에서 현재까지의 각각의 통일방안이 기본적인 틀이 유사하고 그 정신을 계승하였기 때문에 지면상 자세한 내용은 생략한다)
3. 남과 북은 올해 8·15에 즈음하여 흩어진 가족, 친척방문단을 교환하며 비전향장기수 문제를 해결하는 등 인도적 문제를 조속히 풀어 나가기로 하였다.
분단의 아픔 중에서 가장 큰 고통은 가족을 만나지 못하는 것이다. 설이나 추석과 같은 명절이 아니더라도 평소에도 생사조차 확인할 수 없는 고통은 가슴에 한이 된다. 그리고 이 조항에서는 전쟁과 관련된 장기수, 군국포로 문제의 해결도 포함되어 있다 할 것이다.
4. 남과 북은 경제협력을 통하여 민족경제를 균형적으로 발전시키고 사회·문화·체육·보건·환경 등 제반 분야의 협력과 교류를 활성화하여 서로의 신뢰를 다져 나가기로 하였다.
남북한의 경제협력은 우선 정경분리의 원칙을 지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정치적 변수로 인해 경제협력을 원만하게 추진할 수 없다. 남한의 자본과 기술을 북한의 노동력과 자원을 결합시켜 상호 이익을 창출하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그 대표적인 경협이 개성공단이라 할 수 있다. 독일의 경우에도 ‘동서독기본조약’을 통해 경제협력은 물론 사회문화협력까지 강화해 나갔고, 그러한 기반위에 마침내 통일을 이루었다. 그리고 교회 등지에서 인도적 지원을 통해 동독의 빈곤문제의 해결을 도왔는데, 우리도 북한의 빈곤 문제에 도움을 준 다는 것이다.
5. 남과 북은 이상과 같은 합의사항을 조속히 실천에 옮기기 위하여 이른 시일 안에 당국 사이의 대화를 개최하기로 하였다.
6.15 공동선언 이후, 남북 당국 간 회담은 예전에 비해 급격히 늘어났다. 장관급 회담, 군장성급회담, 경제관련 회담, 남북총리급 회담 등을 비롯하여 여러 차원에서 회담이 개최되었다.
전문과 5개 조항 외에 ‘김대중 대통령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서울을 방문하도록 정중히 초청하였으며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앞으로 적절한 시기에 서울을 방문하기로 하였다.’ 하지만 어쨌건 북한이 이를 이행하지 않는 것은 매우 유감이 아닐 수 없다. 지금까지 6.15 공동선언 10주년을 맞이하면서 간략히 그 의의와 내용을 살펴보았다. 조금이나마 통일문제에 도움이 되었으면 하고, 우리 세대에 자유민주주의로 평화통일이 이루어 질 것을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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