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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석 마지막 강의’ 를 금요일에 구입해서 오늘 다 읽었다. 적절한 말인지 모르겠지만 우선 개인적으로 많은 위로가 된다. 그 다음으로는 내 신앙이 더 깊고 넓어 진 느낌이다. 우리나라에 이렇게 위대한 사상가가 있을 줄 불과 몇 해 전만 해도 까맣게 몰랐다. 과언일수도 있으나 다석은 칸트나 헤겔, 루소나 스피노자보다 더 위대하다. 왜냐면 그들은 불교나, 유교 그리고 노장사상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다석은 기독교를 근본으로 하여 이른바 동서양의 유불선기를 통섭한 사람이다. 그러한 연유에서인지 사유의 체계가 남다르고 훨씬 더 높다. 스피노자가 노자를 안다고는 하나 다석에 비해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간디나 소로도 마찬가지다. 다석은 무교회주의자인 김교신, 함석헌 등이 주도한 ‘성서조선’에도 참여하지 않았고 김교신이 참여를 제의하자 일언지하에 거절하였다.

이유는, 그들이 무교회주의를 지향할 뿐 속내는 여전히 바울의 속죄신앙과 기복신앙을 철저히 신봉하였기 때문이다. 심지어 우찌무라 간조도 김교신 보다 먼저 만나보았기에 무교회주의가 어떠한 것이고 그 한계를 잘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내 페이스북 소개란에 '김교신을 따라 배우는 사람'이라고 분명히 밝혀 놓았다. 하지만 내 가슴속에 늘 한 가지 걸리는 게 있었다. 해서 그 점을 몇 년 전에 나의 블로그에 올렸다. 그 내용은 김교신은 철두철미한 복음주의자라는 것이다.(내내 이점이 아쉽다) 비록 무교회주의를 지향했지만 사도바울의 교의 신앙을 벗어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한 글이다. 그 외에도 몇 개의 글이 내 일기장에 기록되어 있다. “나의 임은 반쯤 멀어져 간다”는 글인데 김교신보다 류영모를 더 흠모한다는 내용이다.

어쩌면 지조 없는 행동이고 배신일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생각하면 꼭 그렇지만 않다. 아직도 김교신에게, 무찌무라간조에게 배울 점이 충분히 있고 여전히 존경한다는 사실이다. 류영모를 흠모한다는 것이 바로 배신이라고는 할 수 없다. 애써 말하자면 겸선천하 兼善天下인 셈이다. 나 역시 여러 사람을 존경하고 여러 사람의 영향을 받고 성장해나가는 것일 뿐이다.

다석 류영모 역시 톨스토이의 영향을 받았다. 그런 톨스토이는 루소의 영향을 엄청 받은 사람이다. 그는 루소의 얼굴 모양을 목걸이로 걸고 다닐 정도였다.

그렇다면 루소는 지 혼자 그렇게 위대한 사상가가 되었을까? 아니다. 루소는 그의 저서 에밀을 보면 플라톤의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이른바 플라톤의 국가에 나오는 공동교육 제도를 매우 이상적인 교육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플라톤은 잘 알다시피 소크라테스의 영향을 받았다. 그렇게 거슬러 올라가면 공자의 ‘述而不作 술이부작’이라는 말이 정말로 딱이다.

다석은 종교다원주의자가 아니라 一元다교주의자다. 기독교가 근본이고 유불선을 통해 하느님을 더욱 깊게, 더욱 폭넓게 만나고자 한 사람이다.

성경책 속에서 문자를 통해 하느님과 예수님을 만나려 한 것이 아니라, 우주와 대자연의 섭리를 이해하고 그것을 통해 진정한 하나님을 알고자 하였다.

어린 아이가 알고 있는 아버지가 아니고, 초등학교 3-4학년이 우리 아버지가 이 세상에서 최고라는 차원의 아버지가 아니다. 그 아이들은 아직 미성숙한 상태이다.

知天命을 지나 耳順까지 넘어 자식을 시집 장가보내고 손주까지 안아본 아버지, 기나긴 삶의 여정을 통해 이해하고 깨달은 그 아버지를 아는 것이 진정한 아버지를 아는 것이다.

우리가 알아야 할 하느님 아버지도 이순을 넘긴 아버지가 자신의 아버지를 비로소 깊이 알게 되듯이 하느님 아버지 역시 그렇게 알아야 하는 것이다. 아멘!

두서없이 속절없이 소요 김기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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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에 대해 내가 가져야 하는 최소한의 책임을 다 하고자 하고
북한과 통일문제에 대한 관심과 참여, 그리고 작은 봉사를 공동체와 함께
일구어 나가고자 그저 소박함으로 하루을 일하고자 한다.
2012/03/27 01:33 2012/03/27 0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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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Isabel Marant 2012/04/02 12: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리가 알아야 할 하느님 아버지도 이순을 넘긴 아버지가 자신의 아버지를 비로소 깊이 알게 되듯이 하느님 아버지 역시 그렇게 알아야 하는 것이다. 아멘!

  2. isabel marant dicker boots 2012/04/02 12: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린 아이가 알고 있는 아버지가 아니고, 초등학교 3-4학년이 우리 아버지가 이 세상에서 최고라는 차원의 아버지가 아니다. 그 아이들은 아직 미성숙한 상태이다

  3. Louis vuitton handbags 2012/05/19 16: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단히 감사합니다! 아주 좋은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공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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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 강철 회사 사장인 카네기가 후계자를 지명하게 되자 전 세계의 눈이 그 쪽으로 쏠렸습니다. 그 회사의 중역들 중에는 탁월한 사람이 많았기 때문에 누가 후계자가 될 것인지가 관심의 초점이었습니다. 그런데 카네기는 예상과는 전혀 다르게 ‘쉬브’라는 사람을 후계자로 지명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놀랐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쉬브는 초등학교밖에 졸업하지 않은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쉬브는 원래 정원 청소부로 입사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정원 청소뿐 아니라 공장 안까지도 말끔히 청소를 하곤 했습니다. 그의 성실성과 근면함이 눈에 띄어 그는 청소부에서 정식 직공으로 채용되었습니다. 그러다 사무원으로 승진되었고 마침내는 카네기의 비서로 발탁되었던 것입니다. 카네기의 비서가 된 쉬브는 메모지와 펜을 들고 마치 카네기의 그림자처럼 그의 뒤를 따라다니며 그를 보좌했습니다. 그의 손에는 항상 메모지가 들려 있었고, 사장인 카네기의 지시를 일일이 받아 적고 체크했습니다. 어느 날 카네기가 밤늦도록 사무실에 있다가 집에 가려고 일어나 밖에 나와 보니 쉬브가 그때까지 자리를 뜨지 않고 있었습니다. 놀란 카네기는 "왜 아직도 퇴근하지 않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사장님께서 저를 언제 부르실지 모르는데 어떻게 자리를 비울 수 있습니까?"라고 대답했습니다. 쉬브는 카네기가 가장 신임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작은 일에서부터 큰일까지 충성했기 때문에 후일에 카네기의 후계자가 되어 회사의 경영을 물려받게 된 것입니다. (퍼온글)

이 이야기를 듣고 보니 오다 노부나가의 수하에서 생활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생각납니다. 미천한 신분이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결국 오다노부나가의 뒤를 이어 일본 전국을 통일하게 되지요. 비록 우리에겐 안 좋은 인물이지만요. 그는 매일 아침 주군인 오다 노부나가의 게다를 자기 품안에서 데웠다는 일화는 매우 유명하지요. 忠은 나쁜 게 아닙니다. 그것은 충에 대한 오해이거나 무지입니다. 충은 국가와 주군 혹은 윗사람에 에게 헌신하는 것이고 반대로 국가와 지도자는 아랫사람을 사랑하는 것이지요. 요 임금이 순임금을 택한 것도 이와 비슷합니다. 아브라함 링컨도 쉬브처럼 성실하고 충직한 사람이었죠. 그래서 일국의 대통령이 되고 노예해방이라는 위대한 역사적 업적을 남겼지요. 이러한 이야기는 한번 쯤 마음에 새길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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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immy Choo Shoes 2012/04/02 12: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래서 일국의 대통령이 되고 노예해방이라는 위대한 역사적 업적을 남겼지요. 이러한 이야기는 한번 쯤 마음에 새길 필요가 있습니다.

  2. YSL Shoes 2012/04/02 12: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래서 일국의 대통령이 되고 노예해방이라는 위대한 역사적 업적을 남겼지요. 이러한 이야기는 한번 쯤 마음에 새길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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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서태지와 아이들의 데뷔 장면을 생생히 기억한다. 그때 심사위원이 가요평론가 이백천 씨였다. 혹평은 아니었지만 매우 부정적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독창적인 분야에 도전하였고 결국 성공했다. 그 멤버 중의 양현석은 솔직히 말해 서태지 옆에서 그저 춤을 추는 정도로만 기억된다. 그러던 그가 이수만을 제치고 당당히 주식부자 1위에 등극했다. 그리고 아이돌 스타를 많이 배출하였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가 돈을 많이 벌었다는 것에 있지 않다. 그의 성실함과 도전정신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내가 느끼는 2-30대 그리고 40대는 일에 대한 열정이 부족하다. 게다가 도전 정신도 약해 보인다. 그저 퇴근 시간이 되면 집으로 가기 바쁘다. 그렇게 그렇게 한 달 한 달을 보내는 것 같아서  매우 아쉽다. (또 다른 직장을 찾아 헤매는 것 같기도 하고)나는 오늘 이 기사를 보고 우선 나를 자책했다. 지금 현재 내가 특별히 이룬 것이 없기 때문이다. 학위를 받았다는 것은 나의 목표가 아니고 그다지 중요하지도 않다.

오늘날 대한민국을 살아가고 있는 청년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 우선 자신의 직장을 지배하라는 것이다. 직장에 지배당하는 사람이 아닌 스스로 직장을 지배하는 사람이야 말로 멋진 삶을 사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자신의 일터를 집같이 생각하라고 말하고 싶다. 집에서 승부하지 말고 자신의 일터에서 승부하라는 것이다.

나도 남 못지않게 노력해왔다. 그런데 양현석 과는 비교가 안 된다. 적어도 돈으로 비교했을 때 말이다. (단순 돈으로 비교할 수 없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니 나는 오로지 혼자였다. 그것이 가장 큰 차이다. 양현석은 향상 주변 사람들과 음악을 얘기했지만 나는 오로지 혼자서 통일과 평화와 역사를 얘기해왔다. 그것이 양현석과의 차이다.

나는 돈을 양현석처럼 벌고 싶은 마음은 없다. 다만 진정으로 하루 하루 최선을 다하는 그런 사람, 그런 삶을 살고 싶다. 하는 일이 힘들고 세상의 거대한 벽과 싸우면서 피와 눈물을 더 흘려야 한다. 그저 편안하게 살려고 해서는 안 된다. 며칠 전 현대에 다니는 지인이 이렇게 말했다.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할 나이다. 그래 맞다. 익히 들어온 말이고 지당한 말이다.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진다는 것은 그의 삶이 얼굴에 드러나야 하는 것이지 단순이 시각적으로 보기 좋은 것이 아니다.

참선수행을 하는 스님은 기름지고 풍채 좋은 모습이 아니라 수척한 모습이어야 한다. 박지성과 같은 축구 선수의 얼굴과 발, 발레리나의 강수정의 발가락 그것이 바로 아름다운 것이고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지는 것이다. 자신의 삶과 얼굴에 진정으로 책임을 지는 것은 자신이 하는 일에 얼마나 고민을 가지고 헌신적으로 일했느냐에 달린 것이다. 양현석이 말한 머리 감을 시간이 아까운 게 아니라 머리 감는 다는 것을 깜박 잊을 정도로 일에 한번 미쳐보기 바란다. 우리 모두가 말이다.

 두서없이 주절 주절 김기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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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리 감는 시간도 아까워 늘 모자 썼다

2174억원 연예인 주식 부자 1위 양현석 YG엔터 대표 SM의 이수만 보다 65억이나 많아.

 

 YG의 양현석 대표는 96년 서태지와 아이들 은퇴 이후 서울 합정동의 한 빌라 지하 사무실을 임차했다. 자본금 5000만원에 현금 보유액 2000여만원. 3인조 아이돌 그룹 킵식스를 만들었지만 실패했다. 이듬해 양군기획을 세우고 선보인 지누션이 대박이 나면서 오르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지금은 7층짜리 번듯한 사옥을 갖고 있다.

  - 성공 비결이라면.

  “좋아하는 일, 잘할 수 있는 일 외엔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재작년 결혼하기 전까진 퇴근해 집에 가면 쓰러져 자고, 다시 눈뜨면 일했던 기억뿐이다. 내가 할 줄 알고 유일하게 좋아하는 일이었기에 행복했다.”

  - 늘 모자를 쓴다.

  “머리 관리하는 시간조차 아까워 머리를 잘 안 감았다. 대신 모자를 썼다. 그 시간에 사무실에서 프로듀서·가수와 만나 좋은 콘텐트를 만들기 위해 연구하는 게 좋았다.”

  그의 모자는 50개가 넘는다고 한다. “요즘엔 아내 때문에 잘 감는다. (웃음) 다만 모자 쓰는 건 여전한 습관”이라고 했다. 시간이 아까워 골프도 하지 않는다. 정장은 단 두 벌. 양 대표의 아내 이은주(31)씨는 2002년 YG의 여성 힙합 3인조 ‘스위티’로 데뷔한 가수 출신. 전 젝스키스 멤버 이재진씨의 동생이다.

  -‘YG패밀리’란 표현처럼 가족 같은 분위기다.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회사에서만 지내니 가수와 대화하는 시간이 많아지고 공감대도 커졌다. 소속 가수와 한 번도 계약 문제로 법정 소송을 벌인 적이 없는 것도 서로에 대한 배려심이 컸기 때문 아닐까.”

  - 위기도 있었다.

  “빅마마·휘성이 회사를 나갔을 때, 빅뱅에 지난해 안 좋은 일이 있었을 때가 그랬다. 하지만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는 게 내 신념이다.”

  -서태지와 아이들 데뷔 20주년이다.

  “늘 제 심장 한가운데 박혀 있는 뿌리의 원천이다. 대중음악계로 크게 보면 전환점이자 시작점이다. 우리가 데뷔하기 전까지 한국에 랩음악이 거의 없었다. 힙합을 처음 들여왔고, 그때 음악이 지금까지 변화·발전돼 빅뱅·2NE1을 낳았다.”

  데뷔 20주년을 앞두고 일각에선 기념 음반·공연을 기대했다. 양 대표는 “거액을 제시하며 숱한 제의가 들어왔지만 거절했다. 정말 아름다운 추억은 추억으로 묻어둘 때가 가장 좋은 것 같다”고 했다.

  - 최고 명곡을 꼽는다면.

  “전곡이 명곡이다. 지금 들어도 감격스럽고 촌스럽지 않다.”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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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20 23:48 2012/03/20 2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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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Prada Shoes 2012/04/02 12: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데뷔 20주년을 앞두고 일각에선 기념 음반·공연을 기대했다. 양 대표는 “거액을 제시하며 숱한 제의가 들어왔지만 거절했다. 정말 아름다운 추억은 추억으로 묻어둘 때가 가장 좋은 것 같다”고 했다.

  2. Tory Burch Shoes 2012/04/02 12: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아하는 일, 잘할 수 있는 일 외엔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재작년 결혼하기 전까진 퇴근해 집에 가면 쓰러져 자고, 다시 눈뜨면 일했던 기억뿐이다. 내가 할 줄 알고 유일하게 좋아하는 일이었기에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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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의 추수 편에 장자와 혜시가 물고기를 두고 서로 논쟁하는 대목이 나온다. 물고기가 즐겁게 논다고 느낀 것은 장자 자신의 직감이라고 논쟁을 마무리 짓는다. 비록 학문이 미천하고 여러 모로 부족한 사람이지만 총선 후보들의 면면을 보고서 느낀 점을 몇 자 적는다.

민주주의 국가는 법률이 정한 바에 따라 일정한 연령에 달하면 누구든지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갖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선거에 출마하는 데 특별한 제한이 없다. 하지만 국민의 대표가 되려면 대표로서의 실력과 그만한 자질을 갖추어야 마땅하다. 그렇지 않으면 국민들의 삶이 몹시 고단해진다. 이미 경험하였듯이 국가 지도자를 잘못 뽑으면 무척 피곤하고 짜증이 난다.

축구 국가 대표 선수가 되려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해야 하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국가 대표 선수로서 뿐 만아니라 소속팀에서도 얼마나 많은 피와 땀을 흘려야 하는지도 잘 알고 있다. 실력미달인 선수가 옹고집을 피우면서 국가 대표가 되려하거나 혹시라도 대표 선수가 된다면 그것은 곧 재앙이다.

우리 지역에서 국가 대표가 되겠다고 출사표를 던진 총선 후보들의 이력을 면밀히 살펴보았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더니 한마디로 실망이다. 기량이 뛰어나고 철학이 깊고 소신이 뚜렷한 선수가 거의 없다. 게다가 구태의연한 인물이 태반이다. 어떤 선수는 선거가 없으면 먹고 살기 힘든 다는 비아냥을 받는다. 또 어떤 선수에게는 이제 그만 나왔으면 좋겠다는 소리가 들린다.

그래서 생각건대 국민의 대표가 되려면 이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우선 끊임없이 배우고 공부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학문하는 것은 지식과 전문성을 높일 뿐 만 아니라 수신의 첩경이기 때문이다. 둘째는 대인의 자질을 갖추어야 한다. 대인은 우환 있는 자를 말한다. 나라를 걱정하고 사회를 근심하고 시대 상황을 아파하고 의를 위해 사는 사람이어야 한다. 또 역사를 알고 두려워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인간과 세상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의 삶과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데올로기와 총칼을 드는 것이 혁명이 아니다. 자신을 포함한 여러 사람의 삶을 변화시키는 것이 진정한 혁명이다. 개혁도 마찬가지다.

대중은 계속해서 앞서 간다. 하지만 국민의 대표라는 사람들은 구태를 벗어나지 못한다. 이 얼마나 우스운 꼴인가. 스스로 생각하여 국가 대표로서 부족하거나 자격 미달이라면 깨끗이 접고 물러나는 용기가 필요하다.

이참에 한 가지 짚고 가자. 선거구 획정을 놓고 장난질한 사람들이 있다. 지역주민을 호구로 본 것이다. 그저 입 다물고 선거 날 투표나 하라는 말과 다름없다. 가뜩이나 대의제도 자체에 회의를 느끼고 무용론마저 나도는 실정이다. 이런 와중에 지역 유권자를 우롱한다는 것은 이미 국민의 대표가 될 자격이 없다. 게다가 낮술을 즐기고 자폐적 반공주의에 빠져 흑백논리를 일삼는 사람 역시 선수 교체의 대상이다. 지역 주민을 우습게 아는 자들이 더 이상 국가와 국민의 대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선거구 분구와 관련하여 결과적으로 여야 후보 모두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글을 쓰면서 서애 유성룡 선생의 징비록을 읽었다. 전쟁 통에 이미 죽은 어미의 젖을 빨며 울부짖는 갓난아기. 굶주리고 굶주린 아비와 자식 그리고 남편과 아내가 서로를 잡아먹는 대목에는 참담하다 못해 끔직하고 섬뜩하였다. 특히 무능하고 준비되지 않은 경상우수사 원균을 더 자세히 알게 되었다.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 결국 준비되지 않은 국가 지도자는 국민에게 재앙이 된다는 사실을 곱씹고 또 곱씹었다.

김기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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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06 01:21 2012/03/06 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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