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석은 기독교를 근본으로 하여 이른바 동서양의 유불선기를 통섭한 사람이다. 그러한 연유에서인지 사유의 체계가 남다르고 훨씬 더 높다. 스피노자가 노자를 안다고는 하나 다석에 비해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간디나 소로도 마찬가지다. 다석은 무교회주의자인 김교신, 함석헌 등이 주도한 ‘성서조선’에도 참여하지 않았고 김교신이 참여를 제의하자 일언지하에 거절하였다.
이유는, 그들이 무교회주의를 지향할 뿐 속내는 여전히 바울의 속죄신앙과 기복신앙을 철저히 신봉하였기 때문이다. 심지어 우찌무라 간조도 김교신 보다 먼저 만나보았기에 무교회주의가 어떠한 것이고 그 한계를 잘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내 페이스북 소개란에 '김교신을 따라 배우는 사람'이라고 분명히 밝혀 놓았다. 하지만 내 가슴속에 늘 한 가지 걸리는 게 있었다. 해서 그 점을 몇 년 전에 나의 블로그에 올렸다. 그 내용은 김교신은 철두철미한 복음주의자라는 것이다.(내내 이점이 아쉽다) 비록 무교회주의를 지향했지만 사도바울의 교의 신앙을 벗어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한 글이다. 그 외에도 몇 개의 글이 내 일기장에 기록되어 있다. “나의 임은 반쯤 멀어져 간다”는 글인데 김교신보다 류영모를 더 흠모한다는 내용이다.
어쩌면 지조 없는 행동이고 배신일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생각하면 꼭 그렇지만 않다. 아직도 김교신에게, 무찌무라간조에게 배울 점이 충분히 있고 여전히 존경한다는 사실이다. 류영모를 흠모한다는 것이 바로 배신이라고는 할 수 없다. 애써 말하자면 겸선천하 兼善天下인 셈이다. 나 역시 여러 사람을 존경하고 여러 사람의 영향을 받고 성장해나가는 것일 뿐이다.
다석 류영모 역시 톨스토이의 영향을 받았다. 그런 톨스토이는 루소의 영향을 엄청 받은 사람이다. 그는 루소의 얼굴 모양을 목걸이로 걸고 다닐 정도였다.
그렇다면 루소는 지 혼자 그렇게 위대한 사상가가 되었을까? 아니다. 루소는 그의 저서 에밀을 보면 플라톤의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이른바 플라톤의 국가에 나오는 공동교육 제도를 매우 이상적인 교육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플라톤은 잘 알다시피 소크라테스의 영향을 받았다. 그렇게 거슬러 올라가면 공자의 ‘述而不作 술이부작’이라는 말이 정말로 딱이다.
다석은 종교다원주의자가 아니라 一元다교주의자다. 기독교가 근본이고 유불선을 통해 하느님을 더욱 깊게, 더욱 폭넓게 만나고자 한 사람이다.
성경책 속에서 문자를 통해 하느님과 예수님을 만나려 한 것이 아니라, 우주와 대자연의 섭리를 이해하고 그것을 통해 진정한 하나님을 알고자 하였다.
어린 아이가 알고 있는 아버지가 아니고, 초등학교 3-4학년이 우리 아버지가 이 세상에서 최고라는 차원의 아버지가 아니다. 그 아이들은 아직 미성숙한 상태이다.
知天命을 지나 耳順까지 넘어 자식을 시집 장가보내고 손주까지 안아본 아버지, 기나긴 삶의 여정을 통해 이해하고 깨달은 그 아버지를 아는 것이 진정한 아버지를 아는 것이다.
우리가 알아야 할 하느님 아버지도 이순을 넘긴 아버지가 자신의 아버지를 비로소 깊이 알게 되듯이 하느님 아버지 역시 그렇게 알아야 하는 것이다. 아멘!
두서없이 속절없이 소요 김기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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