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갈라져 살고 있는가?” 이 물음을 진중하게 생각해 본 사람은 드물 것이다. 어쩌면 남북으로 갈라져 사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게 다행일지 모른다. 이것은 분단에 대한 인식이 그만큼 미미하거나 체념하고 산다는 반증이다. 우리가 남북으로 갈라져 사는 원인은 바로 일제의 침탈과 식민지배 때문이다. 한반도에서 일제의 식민지배가 끝나자 미국과 소련간의 이념대결로 한반도를 둘러싼 패권 다툼이 벌어진 것이다. 그것의 역사적 산물이 6.25 전쟁이다.
오는 8월 29일이 한일 강제병합 100주년이 되는 날이다. 아울러 올해가 안중근 의사 순국 100 주기 이기도 하다. 뿐 만 아니라 광복 65주년과 6.25 전쟁 60주년을 맞는 해로써, 일제 강점과 해방 그리고 동족상잔의 비극인 6.25 등 영욕의 역사가 여러 개 겹치는 특별한 해이다.잠시 안중근 의사의 생애를 돌아보자. 안의사는 1907년 8월 1일 국외에서 의병 운동을 전개하기 위해 망명 길에 오른다. 그 즈음은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얼마 되지 않을 때였다. 노모와 처 그리고 형제들은 장자인 안의사와의 기약없는 이별을 염려하여 모두가 만류한다. 이를 두고 신채호 선생이 이르기를 “누가 처자를 어여삐 하지 않는 사람이 있겠는가마는, 열사가 나라를 위함에는 가족까지 희생하는 법이니 나라 사랑과 아내 사랑은 서로 같이 할 수 없다” 고 하였다. 이렇듯 일제 시대의 애국지사들은 나라와 민족을 위해 자신은 물론 가족까지 바쳤다.
같은 해인 1907년 이완용 내각이 들어섰을 때 또 한 편의 조선 역사는 사리사욕과 배신이 극의 경지에 이르고 마침내 36년이라는 비극의 서막을 열게 된다. 1905년 러일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이또히로부미를 앞세워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고, 이어서 내각총리대신 이완용과 농상공부대신 송병준은 조선과 일본의 병합 주도권을 잡기 위해 서로 치열하게 경쟁하는 천하의 매국 행위를 벌였기 때문이다. 그 매국 행위가 1910년 8월 29일 발효된 한일강제병합이고 어언지간 올해로 100년이 되었다.이렇게 오랜 세월이 흘렸지만 아직도 우리 주변에는 기미가요 소리가 들리고 있다. 천황폐하의 은혜를 잊지 않고 천대 만대 살자던 그 노래가 아직도 들리고 있는 것이다. 일제 식민지배는 토지조사사업으로 소작농 수가 급격하게 늘어나고 태평양전쟁과 천황을 위한 총동원령으로 조선의 민초들은 전장으로 끌려갔고, 우리말 사용을 금했으며 창씨개명을 해야 했다. 또 탄광, 철도 도로, 비행장 건설, 군사시설, 하역수송, 토건업, 정신대등의 강제 징용을 당해야 했다. 한마디로 조선인은 일본 본토와 천황을 위한 노예였을 뿐이다. 이러한 악랄한 일제의 수탈을 뉴라이트 계열의 대안 교과서에서는 이른바 ‘근대화식민지론’을 들고 나왔다. 즉 일제 식민지가 조선을 근대화시켰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망조와 가혹한 수탈에 대해 분노하고 마땅히 사과를 요구해야 한다. 특히 일제를 미화하고 친일을 정당화하려는 세력들은 진정으로 참회해야 한다. 아직도 이완용의 후손이 아무런 사과없이 버젓이 고위 공직에 앉아 있고, 경술국치 100주년이 되었는데 송병준의 손자들이 부평에서 부동산 반환 소송을 하고 있다.
한일 강제병합 100주년을 맞아 아직도 끝나지 않은 친일 청산, 그리고 여전히 대립의 칼날을 세우고 있는 분단된 한반도의 현실이 너무도 안타깝다. 그래서 뜻 있는 사람들과 8월 29일 서대문형무소를 방문하기로 했다. 폭염과 살을 에는 그곳에서 나라의 독립을 위해 싸우다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고, 모진 고문으로 옥사한 선열들에게 잠시나마 머리를 조아리려 한다. 진정한 참회는 나로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한일강제병합 100주년을 맞아 소회를 적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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