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징용'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0/08/24 끝나지 않은 친일
  2. 2010/03/02 3.1 절 주기철 목사를 생각하며 (1)

“우리는 왜 갈라져 살고 있는가?” 이 물음을 진중하게 생각해 본 사람은 드물 것이다. 어쩌면 남북으로 갈라져 사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게 다행일지 모른다. 이것은 분단에 대한 인식이 그만큼 미미하거나 체념하고 산다는 반증이다. 우리가 남북으로 갈라져 사는 원인은 바로 일제의 침탈과 식민지배 때문이다. 한반도에서 일제의 식민지배가 끝나자 미국과 소련간의 이념대결로 한반도를 둘러싼 패권 다툼이 벌어진 것이다. 그것의 역사적 산물이 6.25 전쟁이다.

오는 8월 29일이 한일 강제병합 100주년이 되는 날이다. 아울러 올해가 안중근 의사 순국 100 주기 이기도 하다. 뿐 만 아니라 광복 65주년과 6.25 전쟁 60주년을 맞는 해로써, 일제 강점과 해방 그리고 동족상잔의 비극인 6.25 등 영욕의 역사가 여러 개 겹치는 특별한 해이다.

잠시 안중근 의사의 생애를 돌아보자. 안의사는 1907년 8월 1일 국외에서 의병 운동을 전개하기 위해 망명 길에 오른다. 그 즈음은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얼마 되지 않을 때였다. 노모와 처 그리고 형제들은 장자인 안의사와의 기약없는 이별을 염려하여 모두가 만류한다. 이를 두고 신채호 선생이 이르기를 “누가 처자를 어여삐 하지 않는 사람이 있겠는가마는, 열사가 나라를 위함에는 가족까지 희생하는 법이니 나라 사랑과 아내 사랑은 서로 같이 할 수 없다” 고 하였다. 이렇듯 일제 시대의 애국지사들은 나라와 민족을 위해 자신은 물론 가족까지 바쳤다.

같은 해인 1907년 이완용 내각이 들어섰을 때 또 한 편의 조선 역사는 사리사욕과 배신이 극의 경지에 이르고 마침내 36년이라는 비극의 서막을 열게 된다. 1905년 러일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이또히로부미를 앞세워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고, 이어서 내각총리대신 이완용과 농상공부대신 송병준은 조선과 일본의 병합 주도권을 잡기 위해 서로 치열하게 경쟁하는 천하의 매국 행위를 벌였기 때문이다. 그 매국 행위가 1910년 8월 29일 발효된 한일강제병합이고 어언지간 올해로 100년이 되었다.

이렇게 오랜 세월이 흘렸지만 아직도 우리 주변에는 기미가요 소리가 들리고 있다. 천황폐하의 은혜를 잊지 않고 천대 만대 살자던 그 노래가 아직도 들리고 있는 것이다. 일제 식민지배는 토지조사사업으로 소작농 수가 급격하게 늘어나고 태평양전쟁과 천황을 위한 총동원령으로 조선의 민초들은 전장으로 끌려갔고, 우리말 사용을 금했으며 창씨개명을 해야 했다. 또 탄광, 철도 도로, 비행장 건설, 군사시설, 하역수송, 토건업, 정신대등의 강제 징용을 당해야 했다. 한마디로 조선인은 일본 본토와 천황을 위한 노예였을 뿐이다. 이러한 악랄한 일제의 수탈을 뉴라이트 계열의 대안 교과서에서는 이른바 ‘근대화식민지론’을 들고 나왔다. 즉 일제 식민지가 조선을 근대화시켰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망조와 가혹한 수탈에 대해 분노하고 마땅히 사과를 요구해야 한다. 특히 일제를 미화하고 친일을 정당화하려는 세력들은 진정으로 참회해야 한다. 아직도 이완용의 후손이 아무런 사과없이 버젓이 고위 공직에 앉아 있고, 경술국치 100주년이 되었는데 송병준의 손자들이 부평에서 부동산 반환 소송을 하고 있다.

한일 강제병합 100주년을 맞아 아직도 끝나지 않은 친일 청산, 그리고 여전히 대립의 칼날을 세우고 있는 분단된 한반도의 현실이 너무도 안타깝다. 그래서 뜻 있는 사람들과 8월 29일 서대문형무소를 방문하기로 했다. 폭염과 살을 에는 그곳에서 나라의 독립을 위해 싸우다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고, 모진 고문으로 옥사한 선열들에게 잠시나마 머리를 조아리려 한다. 진정한 참회는 나로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한일강제병합 100주년을 맞아 소회를 적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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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철 목사와 오정모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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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강제병합을 체결한 이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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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에 대해 내가 가져야 하는 최소한의 책임을 다 하고자 하고
북한과 통일문제에 대한 관심과 참여, 그리고 작은 봉사를 공동체와 함께
일구어 나가고자 그저 소박함으로 하루을 일하고자 한다.
2010/08/24 20:39 2010/08/24 20:39
Posted by 김기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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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일본의 원폭도시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를 방문하였다. 핵폭탄 세례를 받은 두 도시는 65 년의 세월이 흘렸음에도 남은 방사능 잔재가 내 육체로 스며드는 것 같아 심사를 괴롭혔다. 히로시마의 원폭 자료관을 둘러보면서 느낀 핵폭탄의 위력은 인간의 상상력을 초월할 정도였다. 그 참혹한 광경은 갈증과 현기증을 느끼게 했다. 1945년 8월, 두 도시는 원폭의 광풍과 수천도의 열 그리고 방사증 잔재에 의해 완전히 괴멸되고 말았다. 일본이 세계최초의 피폭국가이지만 그 와중에 조선인이 7만 명이나 사망했기 때문에 우리도 애꿎게 피폭국가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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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도시를 돌아본 후 후쿠오카에 있는 ‘아소탄광’을 찾았다. 아소탄광은 아소다로 전 수상 가문이 설립한 회사이다. 아소타로의 할아버지인 아소 다기치가 창립한 회사인데 조선인 강제징용자 약 8천명을 동원하여 출발한 회사이다. 강제징용자들은 하루에 겨우 연명할 정도의 양식으로 연일 탄광 노동에 시달려야 했다. 그들이 생사를 넘나들며 캐낸 석탄은 일본국군주의자들이 아시아를 초토화하는 광란의 전쟁 놀음에 사용되었다.

조선인 강제징용자들은 관부 연락선을 타고 영문도 모른 채 끌려와 고된 노동속에서 고국의 부모형제를 그리다가 억울하게 죽어간 사람이 상당수이다. 아소가문은 그들의 피와 땀으로 부를 축척했을 뿐 만 아니라 오직 천왕을 위하여 충성하였다. 그날 강제징용자로 끌려가 탄광 노동중에 사망한 무연고자 묘지를 찾았는데 그곳에서 울려펴진 아리랑 곡조는 유난히 슬펐다.

지난해 뉴라이트 계열에서 발간한 ‘대안교과서’에는 ‘근대화식민지론’을 들고 나와 일제식민지배를 합리화하였다. 일제는 폭정이었지만 조선을 근대화 시켰다는 것이 핵심논리이다. 이것은 일본 군국주의자들의 후손들이 주장하는 논리와 동일하고 그 작업을 후소샤 교과서와 지유교과서 등에서 줄기차게 펼치고 있다. 또한 이들의 배후에 자민당 우익 세력인 아소와 같은 정치인들이 있다.

오늘자 국민일보 기사를 보면 일제 식민지 당시 일본의 군수공장 대부분이 조선인을 강제징용하였고 그 대표적인 기업이 미쯔비시와 일본제철, 아소탄광 등으로 나와 있다. 내가 볼 때 이런 기업 외에도 일본 도처에 크고 작은 기업과 국가공사에 조선인 강제징용자들이 동원되었고 조선 본토마저 그들의 병참기지를 만들고 양곡을 일본으로 공수시키는 등 이중 삼중고를 겪게 했다.

아소 탄광처럼 1930년대 약 8천명의 종업원을 거느린 기업이라면 매우 큰 기업이다. 따라서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배를 통해 근대화 된 것이 아니라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화하여 일본 근대화의 밑거름이 된 것이 입증된 것이다. 당시 강제징용으로 끌려간 조선인을 한갓 노예 정도로 다루고 오직 그들의 광기 서린 전쟁과 근대화를 이루는 도구로 사용하였다.

오늘이 3.1절 91주년이고 오랜 세월이 흘렸다. 3.1절하면 떠오르는 인물들이 많지만 개인적으로는 주기철 목사님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주기철 목사님은 네 차례에 걸쳐 투옥되었다. 그의 삶은 한마디로 고난당하는 주의 종이었고 가시밭과 같은 삶을 살았다.

1938년 9월 총회에서 신사참배를 의결하여할 때 주기철 목사는 유치장에 갇히게 된다. 유치장에서 신사참배가 가결되자 그는 다음과 같이 울부짖었다.

아 내 주 예수의 이름이 땅에 떨어지는구나, 평양아! 평양아 ! 조선의 예루살렘아, 너에게서 영광이 떠났도다! 우뚝 솟은 모란봉아, 통곡하여라! 대동강아 대동강아! 나와 함께 울자 울자 라고.

그가 네 차례의 투옥으로 끝내 1944년 해방 한 해를 눈앞에 두고 몸이 해체되는 한계와 모진 고문과 병고로 4월 21일 천국으로 갔다. 그는 뼈가 아리는 모진 고통속에서도 일사각오로 신앙을 지키고 일제에 무릎 끓지 않았다. 그리고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신앙과 민족의 문제를 눈물로 기도하였다.

91년 전의 3.1 운동은 일제 압제로부터 조선의 독립을 세계만방에 고하고 우리 민족의 기상을 의연히 떨친 뜻 깊은 날이다. 이날은 일제의 강압통치에 맞서 민주주의의 역사적 기틀을 만든 날이요, 폭력과 압제에 항거하는 비폭력 투쟁의 깃발을 높이 든 날이기도 하다. 이것은 세계 독립운동사에 길이 남을 쾌거이다.

다시 주기철 목사님의 이야기로 돌아가자. 주기철 목사님이 옥에 네 차례나 갇혀 차가운 겨울날을 눈물과 고통속에 지내는 동안 대한 야수교 장로회 총회장 홍백기 목사는 다음과 같은 성명을 발표했다.

아등은 신사는 종교가 아니요. 기독교 교리에 위반하지 않은 붕의를 이해하고 신사참배가 애국적 국가 의식임을 자각하며 이에 신사참배를 솔선이행하고 추후 국민정신 총동원에 참가하여 비상시국하에서 최후 황국신민으로 적성을 다하기로 함

소화 13년 9월 13일 대한 야수교 장로회 총회장 홍백기라고 적고 있다.

일제식민지 시대는 총과 칼로 조선을 침탈하고 지배하였다. 이 시기에 일제에 항거한다는 것은 목숨을 내 놓아야 했다. 이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고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더욱 아니다.

지금에와서 친일파라고 매도하는 것은 가슴 아픈일 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 역사의 오명을 씻고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잘못된 역사와 잘못된 행동은 회개하는 것이 마땅한 일임에 분명하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 교회는 어떤 모습이고 어떠한 신앙 형태를 보이는 지, 또한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얼마 만큼의 고난이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한다.

  3.1절에 죄인된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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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에 대해 내가 가져야 하는 최소한의 책임을 다 하고자 하고
북한과 통일문제에 대한 관심과 참여, 그리고 작은 봉사를 공동체와 함께
일구어 나가고자 그저 소박함으로 하루을 일하고자 한다.
2010/03/02 00:05 2010/03/02 00:05
Posted by 김기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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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승재 2011/12/15 12: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에스겔 30장 25절 내가 바벨론 왕의 팔은 들어 주고 바로의 팔은 떨어뜨릴 것이라 내가 내 칼을 바벨론 왕의 손에 붙이고 그로 들어 애굽 땅을 치게 하리니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겠고 26절 내가 애굽 사람을 열국 가운데로 흩으며 열방 가운데로 헤치리니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32장 14절 그때에 내가 그 물을 맑게 하여 그 강으로 기름같이 흐르게 하리로다 나 주 여호와의 말이로다 15절 내가 애굽 땅으로 황무하여 사막이 되게 하여 거기 풍성한 것이 없게 할 것임이여 그 가운데 모든 거민을 치리니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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