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본주의'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9/10/12 다산 정약용과 한국 교회
  2. 2008/09/25 누가 이슬람을 욕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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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산에 대해 깊이 알지 못한다. 깊이 알기에는 그의 사상과 도가 너무 높기 때문이다. 그 사람을 알기 위해서는 그가 걸어온 길이나 사상을 보게 된다. 하지만 그 사람의 생애를 알지 못해도 문장 한 줄이 심안을 뒤흔드는 경우가 왕왕있다. 내게 있어서 다산이 그런 존재이고 그것이 그를 잘 알게 해주는 대목이다. 다산의 사상에 관해서는 그리 길지 않는 문장을 읽고 그를 흠모하게 되었다. 바로 지금 이 시간에도 그에 관한 글을 읽고 쓰고 있다. 다산은 18년 유배 생활에서 해배되어 고향인 남양주 마현에 돌아왔다. 그때 쓴 목민심서의 서문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성현의 길을 원래 두 가지 길이 있다. 사도는 각기 만백성을 가르쳐 각기 수신하게 하고 대학에서는 국자를 가르쳐 각기 수신하고 치민하게 하였으니 치민하는 것이 목민하는 것이다. 그런즉 군자의 학문은 수신이 그 반이고 나머지 반은 목민인 것이다” 목민심서의 서문에서부터 머리를 패는 듯한 신선한 충격과 명쾌한 정의는 읽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다산은 목민(牧民)을 치민(治民)이라 하였다. 치민이란 백성을 사랑하고 부양하는 것이다. 때문에 치민이 단순히 권력을 거머쥐고 백성을 다스리는 것은 더욱 아니다. 다산은 평생을 학문에 정진한 인물이고, 유배지에서만 500여 권의 책을 저술하였다. 특히 유학의 대가이고 나아가 의학, 과학, 문학에 까지 폭넓은 학문을 하였다. 다산은 성현은 자신을 수신하는 것이 반이고, 특히 司徒는 대학에서 만백성을 가르쳐 각자가 수신할 수 있게 해야 함을 강조하였다. 이것은 단순히 원시 유가가 강조하는 修己(수기) 만으로는 사회적 책무를 다 할 수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기와 치민의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한 것이다.

내가 보건대 다산의 사상은 오늘날 한국교회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다산이 오늘날 한국 교회의 모습을 바라본다면, 당시 문약에 빠진 성리학을 강하게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하였듯이 분명히 이를 지적하고 비판하였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통탄하였을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다산은 조선에서 몇 안 되는 유학의 대가이다. 때문에 당연히 공자와 맹자의 정치사상을 궤고 있었다. 공자의 정치사상은 크게 보아 행인과 정명이다. 간략이 말해 行仁은 인을 실천하는 것이고, 정명은 사회적 존재로써의 책무이다. 다산은 인과 정명(正名)만으로는 부족하다고 하여 보조적 수단인 ‘덕례형정德禮刑政)’ 을 제시 한바가 있다. 결국 다산은 이상에 치우치고 공리공담이 아닌 실제 생활에서의, 그리고 실제 백성에게 진실로 유익이 되는 정치를 갈구한 것이다.

오늘날 대개의 교회를 보노라면 사회는 신음하고 있는데 오로지 성경적 문약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작 검소하고 가난해야할 교회는 부유하고 배가 부른데 세상과 사회는 가난에 빠져있다. 오직 기도와 전도만을 강조하고 컨텍스트(상황)에는 별 관심이 없거나 타성에 젖어 있다. 개인의 기복과 천국에는 관심이 많고 소외되고 곤고한 이웃에게는 관심이 적다.

 당시 다산은 저자거리에서는 백성이 굶어 죽어가고 있는 데 성리학의 원리 놀음에만 빠져있는 조선의 집권층에 대해 상당한 충격과 분노를 느꼈다. 그래서 그는 성리학의 관념적 심성논의에서 벗어나고자 하였고 또한 내적 심성을 닦고 도리를 추구하는 것에도 비판적이었다. 공허한 논리가 아닌 보다 백성을 위해 현실적이도고 실제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이었고 그것의 대표적인 것이 치민 혹은 치인 그리고 목민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은 社會가 교회를 걱정하는 시대다. 영적 비만에 걸린 한국교회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이기도하다. 하지만 사회가 교회를 비판해도 당연하다는 듯 아랑곳 하지 않은 교회. 오직 교회 안에서의 예배와 기도와 찬송과 봉사와 성경공부에만 목을 매는 교회.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지 못해도 자책하기보다 아무렇지도 않고 문제가 없다고 느끼는 교회. 정녕 변화는 찾아보기 힘든 교회. 이것은 마치 다산이 산 조선시대 때 백성은 곤고하다 못해 굶어 죽는데 성리학의 관념적 심성논의에만 골몰하는 권력가들이나 오늘의 교회가 별반 다르지 않다.

이를 본 다산이 통탄하며 일침을 가한다. 한국 교회여! 복음은 축복이지만 한편으로는 고난이고, 성경은 읽고 기도만 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로 하여금 행하고 이웃과 함께하는 것이란다. 다산, 그는 18세기와 19세기를 살다 간 사람이다. 당시 가톨릭 신자였고 그로 인해 많은 정치적 박해는 받은 인물이다. 역사는 이래 저래 아이러니하다. 종교개혁 주일을 앞두고 성리학의 관념적 심성 논의에 골몰하고 백성과 사회는 안중에 없이 그저 문약에 빠진 조선의 지도층과 오늘날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다고 자처하는 자들이 성경적 문약에 빠져 백면서생이 되어가는 한국 교회를 바라 보니 다산이 다시금 가슴깊이 다가온다.


아울러 진정한 실용을 생각해보는 가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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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에 대해 내가 가져야 하는 최소한의 책임을 다 하고자 하고
북한과 통일문제에 대한 관심과 참여, 그리고 작은 봉사를 공동체와 함께
일구어 나가고자 그저 소박함으로 하루을 일하고자 한다.
2009/10/12 12:10 2009/10/12 12:10
Posted by 김기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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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이나 설이 주일과 겹치는 때가 더러 있다. 나는 일년에 두어번 고향에 내려간다. 사실 명절도 명절이지만 올해 83세의 어머니를 뵙는 것이 우선이다. 83세의 어머니! 나이가 젊어도 경제력없고 힘없으면 별 볼일 없는 사람으로 낙인 찍히기 십상인데, 건강하지 못한 노구 흰머리에 잔주름 누추한 옷매무새를 보고 누구 하나 반겨주는 사람없는, 그래서 밤이면 처절하게 외롭게 보낼 것이다. 그러다가 간혹 못난 막내놈이 어떻게 지낼까하는 생각에 뒤척일 때도 있을 것이다.

나도 인간이지라 때로는 어머니가 싫고 미울때가 왜 없었겠는가. 막상 지금 같은 집에 산다면 그리움보다는 그야말고 일상속에서 오는 애증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기에 별로 정이 없는 형님이지만 어머니를 모시는 것에 고마움을 전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추석에도 주일이 겹쳤다. 늘상 가던 울산교회 대신 울산시민교회란 곳에 갔다. 그날 설교 제목은 ‘죄의 고백으로 형통하라’ 는 것이었다. 그리고 주보의 칼럼 '시민편지'에서 명절에 술자리를 조심하라는 내용이 빼곡이 적혀 있었다. 물론 일견 타당한 말도 있었다.

몇가지 기억나는 대목이 있다. 술과 죄를 연결시켜 강조하면서 여타 인간의 죄의 문제를 적나라하게 계속해서 강조했다. 특히 10여년 전 희대의 살인극 지존파 사건을 예화의 하나로 들었다.


우선 너무나 잘 알듯이 인간인 이상 누구나 죄의 문제를 혼자서 해결할 수 없다. 아무리 선하게 산다해도 부지불식간에 죄를 범하게 된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생각하기도 싫은 끔직한 살인사건이 왜 자꾸 일어나는 것일까? 이렇게 잔악무도하고 점점 더 엽기적 범죄가 일어나고 있는데 교회는 어떤 역할을 하고 있을까? 병들어 가는 세상를 목전에 바라보면서 함께 하지 못하는 교회가 호언할 게 있는건가? 아니면 적어도 같이 아파 해본 적이 있는지 궁굼하다. 교회가 자신을 뒤돌아 보지 못하고, 교회가 병든 세상을 위해 빛지 되지 못하면서 무슨 얼굴로 큰소리를 치는 지 알 수가 없다.


지존파 사건, 다시는 있어서는 안된다. 그런데 그 사람들을 죽여야 할 사람으로 생각만 하지 말고, 그 사람의 속으로 한번쯤 들어가 보라. 사랑의 눈길이, 사랑하는 가슴과 손길이 없는 데 그것이 진정 그리스도인인가? 우리도 인간이니 살다보면 남을 정죄는 할 수 있다. 그러나 사랑이 없으면 가식이고 무지이고 행패에 가깝다.



3살 때 어머니 잃었다. 9살 때 계모손에 자랐다. 14살 때 아버지가 죽었다. 15살 때 중학교를 중퇴 했다. 중국집에서 배달을 했다. 교통사고가 낫다. 일을 하지 못했다. 배가 고파서 음식을 훔쳐 먹다가 감옥에 갔다. 취직도 결혼도 못했다. 사회에서는 알아주지 않는다. 점점 각박해지는 세상 먹을 꺼리도 없는데 누구하나 관심을 갖는 사람이 없다. 오히려 업신여기고 손가락질 한다.  이러한 사람에게 너 고생했다고 한번 위로해주고 같이 울어줄 수 있는지 생각해 보라.  이제 술 주정뱅이라고 욕만하지 말고 왜 그들이 술을 마셔야하는 지를 그들에게 따듯한 눈길을 한번 보내보라. 그들이 그러한 눈길과 손길이 얼마나 그리운지 모른다. 그들은 사랑과 정에 배가 고파 그 허기를 매우려 한잔 술을 마시는 것이다. 그러다 그러다 지치면 삶을 포기하는 것이다.

글을 맺고자 한다. 인간이 죄를 고백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인간인 이상 죄의 굴레를 스스로 빠져 나올 사람은 없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고자 하는 것이다. 나는 죄가 없다. 나는 깨끗하고 고상한 사람이다. 그런데 너는 못배우고 술마시고 죄많은 하류 인생이라는 정도의 시각을 가졌다면 교만하기 짝이 없는 사람이다. 그들이 얼마나 의 고단을 삶을 살고 좌절하고 있는지 그들을 위해 한번쯤 애통해보기 바란다.
나는 그 교만한 사람이 오히려 더 안타깝다. 하나님 앞에서 누가 누구의 죄가 더 많다고 오십보 백보 하고 있는가.
이것이 나의 일, 내 형제, 내 가족의 일이라고 생각해 보기 바란다..


어쩌면 가소로는 일이다. 술마시지말고 노래방도 가지 말고 추석에 찬송가부르고 기도하라는 말씀......참으로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여간 힘들말이 아니다. 이런 질 낮은 설교를 들으러 주일을 지킨다는 이유로 우리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성수' 하고 있다. 솔직히 한심한 생각이 들때도 있다.


먹고 살기가 얼마나 힘든지, 대한민국 땅에서 적어도 남에게 큰소리 치고 살려면 얼마나 처절하고 고단한 삶을 살아야 하는지 그속을 들어가보길 바란다. 아니 그속을 좀 알기를 원한다. 수많은 좌절과 실패와 편견과 고독의 벽에 부딪혀 한치 앞이 안보이는 지독한 삶 속으로 단 한번이라도 이해하려 해보았는가를 묻고 싶다. 왜 그들이 술을 마시고, 왜 그들이 사고를 치고 왜 감옥으로 가야 하는가? 그들도 똑같은 고귀한 존재들이다. 내 품안에 안고 조용히 기도해보라. 그들은 수많은 날들을 가슴에 한을 품고 살아야했고 눈물로 밤을 세워야 했던 사람들이다. 함부로 돌 던지지 말아야 한다. 

내가 보기엔 부자 세습을 하는 K 교회의 K 목사 형제, 갑제형, 대중형 이런 사람들은 대학원까지 나온 많이 배운 사람들이고 술 안 먹는 목사들이고 돈도 있는 사람들이다. 이병박 대통령도 장로가 아닌가.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런 고귀한 사람들로부터 매우 힘들어하고 이들로 인해 좌절하고 실의에 빠지기도 한다는 것이다. 누가 누구에게 돌을 던져야 하는 것인지 곰곰이 생각해볼 일이다.

       


Writer profile
통일교육문화원은 2002년 1월 개원
2002년 3월에 비영리 민간단체 등록(통일부 제31호 : 승인일 2002.3.28)
2004년 11월 사단법인 등록(통일부 제 141호 : 승인일 2004.11.23)
2005년 7월15일 재경부 지정기부금단체로 등록되었습니다.
2008/09/25 00:08 2008/09/25 00:08
Posted by 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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