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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3/10 논어의 세계로 가다

논어는 20편으로 다음과 같은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로 우리에게 익숙한 구절 ‘학이’ 편이다. 일주일에 약 1장 정도를 익히면 일 년이면 팔일편까지 마칠 수 있겠다. 어느 날 친구가 말했다. 그거 읽어서 돈 되겠나? 읽기만해서는 돈이 안 된다. 읽고 사색해야한다. 그러고는 삶에 적용해야 한다. 충분히 돈이 되고 고품격의 삶을 살 수 있다. 아파트 평수가 넓고 자동차 배기량 큰 게 품격과 행복과 직결되는 것이 아니다. 다독으로라도 한번 읽어보라. 그리고 아이들에게도 읽도록 하라.

총 20편으로 되어 있는데 아래와 같다.


학이 16장

위정 24장

팔일 26장

이인 26장

공야장 27장

옹야 28장

술이 37장

태백 21장

자한 30장

향당 17장

선진 25장

안연 24장

자로 30장

헌문 47장

위공령 41장

계씨 14장

양화 26장

미자 11장

자장 25장

요왈 3장



논어 ; 학이 ; 제1장


▣ 제1장(第一章)


子曰 學而時習之면 不亦說(열) 乎아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배우고 그것을 때때로 익히면 기쁘지 않겠는가.

공자께서는 이렇게 강조했지만 대한민국의 대수의 사람들은 공부하는 것을 기쁘게 생각하지 않는다. 우선 초중고 청소년들을 보자. 그들이 공부하는 것을 기쁘게 생각할 수 있는 환경에 있지 않다. 세칭 대한민국의 최고의 고등학교라는 서울의 D 외고 경기도의 Y 외고 등에서 하는 공부는 주로 ‘선행학습’이다. 즉 2학년에 할 것을 1학년에 하는 공부하는 것이다. 그리고 기출문제를 풀고 모의고사를 잘 본 후에 자신의 점수로 어느 정도의 대학에 갈 수 있는지 혹은 수시가 유리한지 정시가 유리한지를 가늠한다.

그렇게 와신상담하여 대학에 가면 어떠한가? 역시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기쁘게 여기겠는가? 대학 역시 기쁘게 여길 분위기가 전혀 아니다.


취업이이라는 게 대학 입시보다 더 어려운 관문이 되다 보니 고등학교 시절보다 더 빡센게 오늘의 현실이다. 그래서 소위 스펙을 쌓기 위해 엄청난 공을 들어야 한다. 그렇다면 다음으로는 어른, 기성세대들은 어떤가? 공부를 하는가? 혹시 기뻐하는가? 내가 볼 땐 전혀 기뻐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먹고 살기에 바쁘다는게다. 일년 책 한 번권도 안 읽는 국민이 상당수라는 게 쉽게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먹고 사는 게 중요하지만 공부를 함으로써 그 문제에 대한 분석과 전략을 세울 수 있고 더 적극적으로 살아갈 수 있다. 또 삶의 지혜를 높이게 된다. 오늘의 현실은 어른이 되면 공부와는 아예 담을 쌓는 사람이 많다. 오히려 공부는 어느 정도의 삶의 내공이 쌓였을 때 하는 게 어린 시절 보다 훨씬 이해가 빠르고 재미가 있다. 그리고 삶에 적용하는 방법을 빨리 알게 된다.

물론 아주 옛날에는 공부하는 것이 쉬웠다는 것은 아니니 오해하지 말기 바란다.

또 노는 게 엄청 재미있다는 것을 우리도 잘 알고 공자는 더 잘 알았을 것이다. 노는 게 재미있다. 하지만 어떻게 노는 가가 중요한 문제이다.


學之爲言 은 效也라 人性皆善이나 而覺有先後하니 後覺者必效先覺之所爲라야 乃可以明善而復其初也라 習은 鳥數(삭)飛也니 學之不已를 如鳥數飛也라 說은 喜意也니 旣學而又時時習之면 則所學者熟而中心喜說하여 其進 이 自不能已矣리라 程子曰 習은 重習也니 時復思繹하여 浹洽於中이면 則說也니라 又曰 學者는 將以行之也니 時習之면 則所學者在我라 故로 悅이니라 謝氏曰 時習者는 無時而不習이니 坐如尸는 坐時習也요 立如齊는 立時習也니라


학(學)이란 말은 본받는다는 뜻이다. 사람의 본성(本性)은 모두 선(善)하나 이것을 앎에는 먼저 하고 뒤에 함이 있으니, 뒤에 깨닫는 자는 반드시 선각자(先覺者)의 하는 바를 본받아야 선(善)을 밝게 알아서 그 본초(本初)를 회복할 수 있는 것이다. 습(習)은 새가 자주 나는 것이니, 배우기를 그치지 않음을 마치 새 새끼가 자주 나는 것과 같이 하는 것이다. 열(說)은 기뻐하는 뜻이다. 이미 배우고 또 때때로 그것을 익힌다면 배운 것이 익숙해져서 중심(中心)에 희설(喜說)을 느껴 그 진전이 자연히 그만둘 수 없는 것이다.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습(習)은 중습(重習)[거듭함] 이나, 때로 다시 생각하고 연역(演繹)해서 가슴속에 무젖게 하면 기뻐지는 것이다.”

또 말씀하였다. “배우는 것은 장차 그것을 행하려고 해서이니, 때로 익힌다면 배운 것이 내 몸에 있다. 그러므로 기뻐지는 것이다.”

사씨(謝氏)가 말하였다. “시습(時習)이란 때마다 익히지 않음이 없는 것이니, 앉음에 시동(尸童)과 같이 함은 앉아 있을 때의 익힘이요, 섬에 제계(齊戒)함과 같이 함은 서 있을 때의 익힘이다.”



有朋自遠方來면 不亦樂乎아


동지(同志)가 먼 지방으로부터 찾아온다면 즐겁지 않겠는가.

사용자 삽입 이미지

내 어릴 적 만해도 이웃 마을 친척집에 가는 것이 즐겁고, 명절에 친지가 오는 것이 얼마나 반가운 일인지 모른다. 그런데 요즘은 설과 추석에 부모 형제 일가친지가 서로 만나기 힘든 세상이다.

동창회, 향우회도 있지만 만나는 사람보다 만나지 못하는 사람이 더 많다.

오늘날은 교통이 발달했어도 멀리서 벗이 찾아오는 경우가 드물다.

게다가 동류 동지가 찾아오는 일은 더욱 드물다.

그래서 예나 지금이나 멀리서 동지가 찾아오는 일은 기쁜일이다.


朋은 同類也니 自遠方來면 則近者可知니라 程子曰 以善及人하여 而信從者衆이라 故로 可樂이니라 又曰 說은 在心하고 樂은 主發散이니 在外니라

붕(朋)은 동류(同類)[동지(同志)] 이니 먼 지방으로부터 온다면 가까이 있는 자들이 <찾아옴을> 알 수 있다.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선(善)을 남에게 미쳐서 믿고 따르는 자가 많다. 그러므로 즐거울 수 있는 것이다.”

또 말씀하였다. “열(說)[열(悅)] 은 마음속에 있는 것이요, 낙(樂)이란 발산(發散)함을 주장하니 외면에 있는 것이다.”



人不知而不이면 不亦君子乎아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서운해 하지 않는다면 군자(君子)가 아니겠는가.”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이 몇 사람이나 있을까.....

가족들도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데 ....

그러니 학문하는 사람은 남이 알아주는 것은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알아주지 않아도 기뻐해야 한다. 세상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含怒意라 君子는 成德之名이니라 尹氏曰 學은 在己하고 知不知는 在人하니 何之有리오 程子曰 雖樂於及人이나 不見是而無悶 이라야 乃所謂君子니라 愚謂 及人而樂者는 順而易하고 不知而不者는 逆而難이라 故로 惟成德者能之라 然이나 德之所以成은 亦由學之正, 習之熟, 說之深而不已焉耳니라

○ 程子曰 樂은 由說而後得이니 非樂이면 不足以語君子니라

온()은 노여움을 품은 뜻이다. 군자(君子)는 덕(德)을 완성한 이의 명칭이다.

윤씨(尹氏)가 말하였다. “학문(學問)은 자신에게 달려 있고, 알아주고 알아주지 않음은 남에게 달려 있는 것이니, 어찌 서운해 할 것이 있겠는가.”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비록 남에게 미치는 것을 즐거워하나 옳다함을 받지 못하더라도 서운함이 없어야 이것이 이른바 군자(君子)라는 것이다.”



내가 생각건대, “남에게까지 미쳐서 즐거운 것은 순(順)이어서 쉽고, 알아주지 않는데도 서운해하지 않는 것은 역(逆)이어서 어렵다. 그러므로 오직 덕(德)을 이룬 군자(君子)만이 능한 것이다. 그러나 덕(德)이 이루어지는 소이(所以)는 또한 학문이 올 바라야 하고, 익히기를 익숙히 하고, 기뻐하기를 깊이 하여 그치지 않음에 말미암을 뿐이다.”

○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낙(樂)은 열(說)을 말미암은 뒤에야 얻어지는 것이니, 낙(樂)이 아니라면 군자(君子)라고 말할 수 없다.”


-  현토완역사서집주에서 참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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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에 대해 내가 가져야 하는 최소한의 책임을 다 하고자 하고
북한과 통일문제에 대한 관심과 참여, 그리고 작은 봉사를 공동체와 함께
일구어 나가고자 그저 소박함으로 하루을 일하고자 한다.
2011/03/10 00:42 2011/03/10 00:42
Posted by 김기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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