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은 4년마다 돌아온다. 4년이라는 세월은 길지만 기다린 만큼 전 세계인을 들뜨게 한다. 메시와 루니, 호나우도 그리고 박지성과 같은 쟁쟁한 스타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축구팬들을 흥분하게 한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은 ‘붉은 악마’를 중심으로 ‘거리응원’이라는 새로운 문화와 함께 4강 신화를 이루었고, 대한민국이 축구로 하나가 되는 놀라운 역사를 이루었다. 이번 남아공 월드컵은 남북한이 동시에 본선 무대에 진출한 뜻 깊은 대회이다. 비록 북한은 조별 예선에서 탈락하고 우리는 8강 진출에 실패했지만, 남북한 모두 후회 없이 싸운 멋진 경기였다. 이번 월드컵에서 눈물 흘리는 선수들을 여려 명 보았다. 차두리, 이영표, 정대세 심지어 허정무 감독까지. 그중에서 정대세 선수의 눈물이 왠지 더 가슴 아프다. 지금도 생생히 떠오르는, 그가 브라질과의 첫 경기 때 북한 국가를 부르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은 국적과 이념을 떠나 보는 이들로 하여금 울컥 눈물을 솟구치게했다. 11명의 북한 선수 중에 유독 정대세 선수만이 북받치는 설움을 이기지 못하고 국가가 울리는 동안에도 참을 수 없은 서러운 눈물을 떨구었기 때문이다. 정대세라고하면 단지 축구 선수로만 생각하기가 쉽다. 하지만 그는 분명 분단의 또 다른 비극이고 상흔이다. 할아버지가 일제시대에 일본으로 건너갔고 아버지가 조선인 2세이고 정대세는 3세이다. 그는 인터뷰에서 “나는 남한도 북한도 아닌 재일동포다” 라고 말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한반도의 식민지와 분단 그리고 전쟁은 현해탄 건너 재일교포 사회마저 남과 북으로 갈라놓았고 그로 인해 몸서리치는 정체성에 대한 갈등은 그들의 삶을 더 고단하게 했다. 언론에서는 정대세를 ‘인민 루니’라고 부른다. 그것은 잘못된 표현이다. 인민 루니가 아니라 단지 재일동포이고, 북한 대표팀의 유니폼을 입었을 뿐이다. 그가 진정으로 꿈꾸는 것은 북한의 축구 대표선수가 아니라 할아버지 시대와 아버지 시대를 극복하는 것이다. 적어도 1910년 한일병합 이전에서부터 영속한 한반도 역사 속의 ‘정대세’를 애타게 그리고 찾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통일'이라고 말할 수 있다. 포르투갈 전에서 골을 넣으면 ‘조국통일 골 세리모니’ 를 펼치겠다는 것에서 그의 마음을 잘 읽을 수 있고, 하나된 나라를 염원하고 있는 것이다. 정대세 선수는 남한 대표도로 일본대표로 모두 뛰기 어려웠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식민지와 분단 그리고 일본에서 조선인으로서의 운명을 잘 말해주는 대목이다.
눈물은 진실하다. 고통과 회한과 감격 없이 그저 흐르지 않는다. 그러기에 눈물은 오직 인간만이 갖는 최상의 언어이다.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에도, 생을 마감하는 순간에도 눈물을 흘린다. 눈물은 인간의 삶과 신의 섭리라는 두 가지 영역에서 교차한다. 그래서 눈물은 아름답고 위대하다.
조국의 분단으로 이방(異邦)에서 겪어야 하는 설움은 그야말로 필설로 다할 수 없다. 특히 한반도 침탈의 당사자인 일본에서 '조선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쩌면 그 자체가 아직도 끝나지 않은 식민지의 연속이다. 정대세는 “큰 경기에 나와 감격해서 울었다” 고 말 했지만, 분명 그의 가슴 속에는 할아버지 시대의 식민 지배와 아버지 시대의 남북 분단이라는 이중적 구조에서 이방에서 조선인으로 살아야 했던 남모르는 설움이 한없이 북받쳤을 것이다. 1950년 이후 지금까지 휴전선을 맞대고 서로 총부리를 겨누고 남북이 서로 생체기 내며 사는 것에 이골이 나서인지 36년 동안 폭정을 일삼은 나라에서 남한도 북한도 아닌 ‘조선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그들의 아픔을 정작 모르거나 잊고 살지도 모른다.
북한 축구는 영국의 프리미어리그나 이탈리아의 세리에A, 스페인의 프리메라리가 독일의 분데스리가 등에서 뛰는 소위 해외파가 단 한 사람도 없다. 정대세와 안영학이 일본 제이 리그에서 뛰고 있는 정도다. 월드컵 본선 무대에 오른 팀 치고는 상대적으로 초라하다. 그리고 해외팀과의 교류도 거의 없고 아시아 지역, 한반도 북쪽의 무명에 가까운 팀이 월드컵 본선에 올라 브라질과 2대1이라는 성적을 거둔 것은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비록 3전 전패로 탈락했지만 그들의 투혼에 다시 한 번 박수를 보낸다.
한국과 북한 모두 경기가 끝났다. 생각건대 이제는 정대세와 같은 선수가 더 이상 나오지 않았으면 한다. 원래는 한 민족 한 국가이었는데 각각 다른 국가를 불러야 하고, 어느 쪽에도 어느 편에도 속하기 힘들었던, 어떻게 보면 이방인이자 경계인이 흘려야 했던 그 통한과 서러움의 눈물을 다시는 흘리지 않았으면 한다. 
'뉴라이트'에 해당되는 글 3건
- 2010/07/01 정대세와 분단 그리고 눈물
- 2010/03/02 3.1 절 주기철 목사를 생각하며 (1)
- 2008/11/29 탤런트 문근영과 좌파 논쟁
얼마 전에 일본의 원폭도시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를 방문하였다. 핵폭탄 세례를 받은 두 도시는 65 년의 세월이 흘렸음에도 남은 방사능 잔재가 내 육체로 스며드는 것 같아 심사를 괴롭혔다. 히로시마의 원폭 자료관을 둘러보면서 느낀 핵폭탄의 위력은 인간의 상상력을 초월할 정도였다. 그 참혹한 광경은 갈증과 현기증을 느끼게 했다. 1945년 8월, 두 도시는 원폭의 광풍과 수천도의 열 그리고 방사증 잔재에 의해 완전히 괴멸되고 말았다. 일본이 세계최초의 피폭국가이지만 그 와중에 조선인이 7만 명이나 사망했기 때문에 우리도 애꿎게 피폭국가 된 셈이다.

두 도시를 돌아본 후 후쿠오카에 있는 ‘아소탄광’을 찾았다. 아소탄광은 아소다로 전 수상 가문이 설립한 회사이다. 아소타로의 할아버지인 아소 다기치가 창립한 회사인데 조선인 강제징용자 약 8천명을 동원하여 출발한 회사이다. 강제징용자들은 하루에 겨우 연명할 정도의 양식으로 연일 탄광 노동에 시달려야 했다. 그들이 생사를 넘나들며 캐낸 석탄은 일본국군주의자들이 아시아를 초토화하는 광란의 전쟁 놀음에 사용되었다.
조선인 강제징용자들은 관부 연락선을 타고 영문도 모른 채 끌려와 고된 노동속에서 고국의 부모형제를 그리다가 억울하게 죽어간 사람이 상당수이다. 아소가문은 그들의 피와 땀으로 부를 축척했을 뿐 만 아니라 오직 천왕을 위하여 충성하였다. 그날 강제징용자로 끌려가 탄광 노동중에 사망한 무연고자 묘지를 찾았는데 그곳에서 울려펴진 아리랑 곡조는 유난히 슬펐다.
지난해 뉴라이트 계열에서 발간한 ‘대안교과서’에는 ‘근대화식민지론’을 들고 나와 일제식민지배를 합리화하였다. 일제는 폭정이었지만 조선을 근대화 시켰다는 것이 핵심논리이다. 이것은 일본 군국주의자들의 후손들이 주장하는 논리와 동일하고 그 작업을 후소샤 교과서와 지유교과서 등에서 줄기차게 펼치고 있다. 또한 이들의 배후에 자민당 우익 세력인 아소와 같은 정치인들이 있다.
오늘자 국민일보 기사를 보면 일제 식민지 당시 일본의 군수공장 대부분이 조선인을 강제징용하였고 그 대표적인 기업이 미쯔비시와 일본제철, 아소탄광 등으로 나와 있다. 내가 볼 때 이런 기업 외에도 일본 도처에 크고 작은 기업과 국가공사에 조선인 강제징용자들이 동원되었고 조선 본토마저 그들의 병참기지를 만들고 양곡을 일본으로 공수시키는 등 이중 삼중고를 겪게 했다.
아소 탄광처럼 1930년대 약 8천명의 종업원을 거느린 기업이라면 매우 큰 기업이다. 따라서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배를 통해 근대화 된 것이 아니라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화하여 일본 근대화의 밑거름이 된 것이 입증된 것이다. 당시 강제징용으로 끌려간 조선인을 한갓 노예 정도로 다루고 오직 그들의 광기 서린 전쟁과 근대화를 이루는 도구로 사용하였다.
오늘이 3.1절 91주년이고 오랜 세월이 흘렸다. 3.1절하면 떠오르는 인물들이 많지만 개인적으로는 주기철 목사님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주기철 목사님은 네 차례에 걸쳐 투옥되었다. 그의 삶은 한마디로 고난당하는 주의 종이었고 가시밭과 같은 삶을 살았다.
1938년 9월 총회에서 신사참배를 의결하여할 때 주기철 목사는 유치장에 갇히게 된다. 유치장에서 신사참배가 가결되자 그는 다음과 같이 울부짖었다.
아 내 주 예수의 이름이 땅에 떨어지는구나, 평양아! 평양아 ! 조선의 예루살렘아, 너에게서 영광이 떠났도다! 우뚝 솟은 모란봉아, 통곡하여라! 대동강아 대동강아! 나와 함께 울자 울자 라고.
그가 네 차례의 투옥으로 끝내 1944년 해방 한 해를 눈앞에 두고 몸이 해체되는 한계와 모진 고문과 병고로 4월 21일 천국으로 갔다. 그는 뼈가 아리는 모진 고통속에서도 일사각오로 신앙을 지키고 일제에 무릎 끓지 않았다. 그리고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신앙과 민족의 문제를 눈물로 기도하였다.
91년 전의 3.1 운동은 일제 압제로부터 조선의 독립을 세계만방에 고하고 우리 민족의 기상을 의연히 떨친 뜻 깊은 날이다. 이날은 일제의 강압통치에 맞서 민주주의의 역사적 기틀을 만든 날이요, 폭력과 압제에 항거하는 비폭력 투쟁의 깃발을 높이 든 날이기도 하다. 이것은 세계 독립운동사에 길이 남을 쾌거이다.
다시 주기철 목사님의 이야기로 돌아가자. 주기철 목사님이 옥에 네 차례나 갇혀 차가운 겨울날을 눈물과 고통속에 지내는 동안 대한 야수교 장로회 총회장 홍백기 목사는 다음과 같은 성명을 발표했다.
아등은 신사는 종교가 아니요. 기독교 교리에 위반하지 않은 붕의를 이해하고 신사참배가 애국적 국가 의식임을 자각하며 이에 신사참배를 솔선이행하고 추후 국민정신 총동원에 참가하여 비상시국하에서 최후 황국신민으로 적성을 다하기로 함
소화 13년 9월 13일 대한 야수교 장로회 총회장 홍백기라고 적고 있다.
일제식민지 시대는 총과 칼로 조선을 침탈하고 지배하였다. 이 시기에 일제에 항거한다는 것은 목숨을 내 놓아야 했다. 이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고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더욱 아니다.
지금에와서 친일파라고 매도하는 것은 가슴 아픈일 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 역사의 오명을 씻고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잘못된 역사와 잘못된 행동은 회개하는 것이 마땅한 일임에 분명하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 교회는 어떤 모습이고 어떠한 신앙 형태를 보이는 지, 또한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얼마 만큼의 고난이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한다.
3.1절에 죄인된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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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재 2011/12/15 12: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에스겔 30장 25절 내가 바벨론 왕의 팔은 들어 주고 바로의 팔은 떨어뜨릴 것이라 내가 내 칼을 바벨론 왕의 손에 붙이고 그로 들어 애굽 땅을 치게 하리니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겠고 26절 내가 애굽 사람을 열국 가운데로 흩으며 열방 가운데로 헤치리니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32장 14절 그때에 내가 그 물을 맑게 하여 그 강으로 기름같이 흐르게 하리로다 나 주 여호와의 말이로다 15절 내가 애굽 땅으로 황무하여 사막이 되게 하여 거기 풍성한 것이 없게 할 것임이여 그 가운데 모든 거민을 치리니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로다
근간에 탤런트 문근영의 기부를 놓고 장안에 이런 저런 언설이 난무하고 있다. 소외된 이웃을 위해 익명으로 기부한 것을 칭찬은 고사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야할 퇴물인 색깔 논쟁으로 몰고 가는 이 회괴한 역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도대체 좌파란 무엇이 길래 대명천지에 쌍심지를 켜고 볼썽사나운 난장판을 벌이는 것일까. 원래 좌파(left)란 프랑스 혁명을 전후해서 사용되었다. 절대왕정시절 삼부회의에서 국왕을 중심으로 평민 계급이 왼쪽에 앉은 데서 유래되었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좌파․우파라는 것은 우선 매우 쟁론적 개념이다. 어디에서 어디까지가 범주인가부터 상대적이고 가치론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도양단식으로 좌우를 단정 짓기는 어렵다. 그러나 개념 정의를 위해 하나의 준거로써 정치․경제를 중심으로 분석 할 수는 있다. 예컨대 市場을 놓고서 평등과 자유, 개인과 집단 등 어느 것을 선호 하느냐에 따라 대략 판단할 수 있다. 그런데 평등, 분배, 공동체의 이익을 추구한다고 해서 친북 또는 공산주의라는 등식은 위협한 발상이자 일종의 이데올로기 편집증이다.
우리사회는 유럽과는 달리 일제식민지 시대와 해방 그리고 6.25 와 4.19 등을 거치면서 프랑스혁명 당시의 좌파보다는 진보한 이른바 좌익 운동이 역사적으로 존재한 것은 사실이다. 이러한 역사적 노정에서 항일독립운동을 전개하기도 했고 7, 80년대에는 군사독재와 맞서 싸우기도 했다. 또한 민주화운동 가운데서 반미와 통일을 외치기도 했다. 아울러 일련의 민주화 운동 혹은 사회변혁운동의 노정에서 북한과 관련하여 불미스럽고 한편으로는 불행한 역사를 감내해야만했다. 또한 흔히 반미란것도 미국의 패권주의와 헤게모니에 대한 반감이지 미국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문제는 오늘날 즉, 1980년대 말 동구 사회주의의 몰락과 독일통일로 세계차원의 탈냉전 시대를 맞이했고, 동북아시아 지역차원에서는 한․중, 한․소, 한․베트남 수교로, 또 남북 간에서는 6.15 라는 역사상 최초의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한반도에서도 완전한 냉전의 끝이 찾아 온 것이다. 때문에 1990년 이후 세계화와 지금의 글로벌이라는 새로운 시대가 도래 한 지 이미 오래라는 것이다. 이는 이념과 사상을 초월하여 지구촌이 하나로 통합되는 일종의 세계체제와도 같은 차원이다.
작금의 대한민국에서 벌이지고 있는 좌우논쟁을 유럽사회가 본다면 쓴 웃음을 지을 것이다. 굳이 북유럽 국가들을 보지 않더라도 영국은 블레어 총리에 이어 브라운 총리까지 10년이 넘게 이른바 좌파 정권이 건재하고 있다. 이웃 중국은 공산당이 일당독재를 하고 체제는 사회주의이다. 그런데 경제는 자본주의를 도입하여 GDP가 세계 4위를 차지하고 있다. 일본도 비록 강령에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삭제했지만 공산당이 의회에 진출해 있고 지방의회까지 진출한지가 오래이다. 이렇듯 오늘날 국제사회는 이념과 사상을 뛰어 넘어 경제적 실리를 가장 우선적으로 추구하고 있다. 그야말로 이념의 시대는 가고 오직 국가의 이익을 위해 상호의존과 협력의 글로벌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차제에 몇 가지 제언을 하고자 한다. 첫째 과거 전쟁과 분단이라는 역사적 불행을 무시하지는 않되, 역사의 프리즘을 1950년에 맞춰 터널 안에 갇히지는 말자는 것이다. 둘째, 우파는 善이고 좌파는 惡이다 라는 등식과 흑백논리는 삼가자는 것이다. 셋째 북한과의 화해와 협력을 통해 평화통일을 주장하는 사람을 좌파 빨갱이라고 도매금으로 매도하지 말자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건강한 공동체는 좌와 우, 또는 진보와 보수가 공존하는 것이다. 축구나 농구에도 오른발과 왼발, 오른손과 왼손 모두가 있어야 한다. 이것은 하늘의 이치이고 섭리이기때문이다. 그리고 극우 언론에서 천박한 색깔론을 국민에게 오도하는 것에 경도되지 않았으면 한다. 지금 남한사회를 북한체제처럼 공산화하겠다는 앙증맞고 발칙한 상상을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진정한 자유민주주의는 다양성을 존중하고 개방적이며 미래지향적이다. 그래서 폐쇄된 집단주의나 광기의 전체주의보다 휠씬 건강하고 아름다운 것이다.
김기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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