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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7/22 조선통신사 이야기


 대마도 가는 길은 뱃길밖에 없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길은 은근히 겁이 날 때가 있다. 대마도처럼 육지가 아닌 섬은 더 그러하다. 며칠 전 지인을 만났다. 전남 보길도가 고향이다. 보길도 역시 배가 유일한 교통수단이다. 비행기로 날거나, 다리를 놓거나, 해저터널을 만들지 않고는 달리 방법이 없다. 그는 이십 여 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서울에서 장례식에 가는 데, 태풍을 만나 해남땅에서 발을 동동 굴려야 했다. 눈앞에 보이는 보길도를 참담하게 바라보며 인간이 자연 앞에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가를 뼈저리게 느꼈을 것이다.

 나는 임진왜란에 대해 관심이 많다. 임진왜란은 중세 한반도를 둘러싼 패권전쟁이기 때문이다. 임진왜란은 1598년에 끝이 났지만, 기실 한반도를 둘러싼 열강들의 패권 다툼은 끝이 아닌 서막이었다. 중국 대륙의 명과 청 그리고 러시아와 일본은 조선에 대한 영향력 확대와 침탈의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1894년을 전후열강들은 마침내 그 속내를 드러내고, 서로 이리 치고 저리 치다  결국 일본이 조선을 접수해버렸다. 일본은 임진왜란이 끝나고 조선을 차지하는데 약 300년이 걸린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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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동북아 패권전쟁의 시초인 임진왜란. 임진왜란에 빼놓을 수 없는 역사적 사건이 한가지 있는데, 바로 조선통신사이다. 임진왜란이 발발하기 전인 1590년 일본정세를 알아보기 위해 황윤길과 김성일 일행이 일본에 가게 된다. 귀국 후 두 사람은 서로 상반된 견해를 선조 임금에게 보고하였다. 이 사실은 아직도 역사의 언저리에 회자되고 비록 지나간 역사이지만 아쉽고 유감스럽다.

 조선통신사가 언제 시작되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대략 이 무렵일 것이고 1811년까지 계속되었다. 우리 삶에서 '선택의 여지가 없는 선택', 그리고 인간이 자연 앞에서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 앞서 언급했다. 지금의 대마도 가는 뱃길이 아무리 걱정스럽고 겁이 나도, 당시 조선통신사들이 가는 길과는 비교할 수 없다. 항해술이 발달하지도 않은 시대에 무동력선을 타고 수 백 키로 망망대해를 건너는 것은 목숨을 걸지 않으면 어려운 일이다. 한마디로 생사를 건 항해이다.  바로 그 조선통신사가 간 길을 작은 부분이나마 더듬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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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일의 시비이다. 김성일은 도요토미히데요시가 조선을 정벌할만한 인물이 아니라고 보고한다. 당시 조선통신사 부사로 갔다. 정사는 황윤길이다.

 

비록 도요토미 히데요시 정권을 정탐하는데는 실패했지만, 그들의 기백은 본받고 싶다. 나라를 사랑하는 선열들의 마음은 한결같았기 때문이다. 조선통신사는 당시 최고의 관리와 학자, 문화 예술인까지 대동하였다. 한양 땅에서 천리길인 부산 그리고 부산에서 대마도, 대마도에서 이끼섬을 거쳐 시모노세키항에 당도했다. 다시 교토와 에도지역까지 이천리를 휠씬 넘는 길을 오간 용기에 뒤늦은 박수를 보낸다. 다시 말하건대 그들은 일생일대 목숨을 건 항해였다. 나라가 어렵고 위태로울 때 생사를 거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어찌 내가 잠시 겪은 배 멀미가 힘들다고 할 수 있겠는가. 참으로 부끄러울 뿐이다.

후쿠오가 가는 크루즈 선착장에서 사색에 잠겨 김기환 몇 자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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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에 대해 내가 가져야 하는 최소한의 책임을 다 하고자 하고
북한과 통일문제에 대한 관심과 참여, 그리고 작은 봉사를 공동체와 함께
일구어 나가고자 그저 소박함으로 하루을 일하고자 한다.
2009/07/22 11:42 2009/07/22 11:42
Posted by 김기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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