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만 있고 사랑이 없다.
기도만 있고 사랑이 없으면 이것 만큼 공허한 게 있을까.
오히려 기도가 없되 사랑이 있는 게 더 낫지 않을까.
나는 오늘 J 목사 생각을 했다. 그는 열심히 기도하는 것 같다,
그런데 그는 사랑이 없는 것 같다. 내가 느끼기에는 말이다.
그냥 기업의 회장같이 느껴질 뿐이다. 그렇다고 내가 직원도 아닐텐데.
기도도 없고 사랑도 없다면 아마도 최악일 것이다.
그런데 기도도 모르고 사랑도 모른다면 또 그것은 무엇인가?
사랑이 기도가 되고 삶이 기도가 되고 소명이 기도가 되는 것은 어떨까.
주님은 기도를 원할까? 사랑을 원할까?
나는 사랑을 더 원하는 것 같다.
그리고 기도는 무언가를 구한다기보다는 하나님에 대한 나의 고백이 아닐까.
기도하는 것도 좋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보자 그것이 기도요, 그것이 구함이 될 것이다.
기도가 있고 사랑이 없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기도는 믿지 아니 하는 이들도 다른 믿을을 가진 이들도 많이 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랑하자. 그리고 사랑하지 아니한 것을 주님께 아뢰보자. 그것이 기도가 되게 하자.
그리고 사랑은 째째하지도 나약하지도 비겁하지도 않은 순전한 것이다. 어쩌면 순전보다
더 강할지도 모른다.
그것은 남을 울게 하기도 하고 웃게 하지고 하고 굴복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오늘 허접한 얼치기 삼류 작가는 이렇게 글을 맺는다.
기도보다는 아다음다운 영혼의 감동이 있는 노래를, 노래보다는 넌지시 건너는 소통의 말 한마디를,
말 한마디 보다는 따뜻한 사랑을.... 사랑은 몸으로 하는 기도이기 때문이다.
김기환

아래는 최규하 전 대통령의 이야기다.
" 나 같은 이에게 누구 총을 겨눠"
모두들 각하를 '최 주사'라고 부릅니다." "뭐야. 최 주사?"
1980년 4월12일, 청와대 경내에서 최규하 전 대통령과 청와대 부속실에 소속된 권영민 비서관이 주고받은 말이다.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한 후 갑자기 대통령직에 오른 최 전 대통령은 신군부가 사실상 권력을 장악하던 그 시기, 국민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궁금해했다.
그래서 권 비서관에게 '솔직한 국민들의 생각'을 물어보았고 어렵게 말문을 연 권비서관이 용기를 내 '최 주사'라는 듣기 거북한 말을 건넨 것이다.
당시 최 전 대통령은 지나치게 신중하고 우유부단하다는 의미로 '최 주사'라고 불렸다. 그 별명에는 대통령직을 맡겨놓고 보니 6급 공무원인 주사 정도밖에 안 되는 인물이 아니냐는 뜻도 담겨 있었고, 또 너무 신중하게 생각하다가 '신군부'에 끌려 다니지 말라는 국민들의 열망도 담겨 있었다.
평소 온화한 최 전 대통령이었지만 그 날은 불같이 화를 냈다고 한다.
최규하 전 대통령과 부인 홍 기 여사에 대한 일화를 묶은 책 '자네, 출세했네-내가 보아온 최규하 대통령과 홍기 여사'가 공식 출간된다. 저자는 노르웨이, 덴마크, 독일대사를 지내고 현재 '한독 미디어대학원대학교(KGIT)'의 부총장으로 일하는 권영민 대사(62).
최 전 대통령의 당시 위상은 그의 독백에서도 잘 나타난다. 대통령이 청와대 경내를 산책한다고 하자 대통령 경호실장(현역 군인)이 놀라서 헐레벌떡 대통령에 다가갔다. 그런데 최 전 대통령은 "그만 가서 일보라"며 경호실장을 돌려보냈다.
평소 최 전 대통령은 항상 "나 같은 사람에게 누가 총을 겨누겠는가"라며 경호를 귀찮게 생각했다고 한다.
또 전두환 신군부가 권력을 장악하는 결정적 사건인 12.12 사태 당시 최 전 대통령의 아들을 포함한 가족들은 총리 공관 내에 있으면서도 '간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혀 몰랐다.
권영민 대사는 27일 "1967년 외무부 장관으로 임명돼 국무총리를 거쳐 1980년 8월16일 대통령직을 하야할 때까지 큰 족적을 남긴 분에 대해 국민들이 그 진면목을 제대로 모르고 있다"면서 "최규하 대통령의 인간적인 면모라도 세상에 알리기 위해 책을 출간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최 대통령은 공직자로서는 엄정하고 청렴했으며 외교관으로서는 당당하고 끈질겼고 지도자로서는 근검하고 성실하게 일생을 선비로 살면서 국민들에게 모범을 보여줬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권 대사는 최 전 대통령이 외무장관일 때부터 모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서거로 국무총리였던 최 전 대통령이 대통령직을 승계하면서 대통령부속실 비서관으로 차출되어 최 전 대통령이 하야할 때까지 옆에서 모셨다.
청와대 비서관으로 일하게 되자 관용차로 포니 승용차가 배치됐고 과거 박정희 대통령 가족들을 모시던 운전사가 차를 몰게 되자 최 전 대통령이 그에게 축하의 말로 건네준 '자네, 출세했네'가 책 제목이 됐다.
책에는 최 전 대통령 부부와 얽힌 숱한 일화 등이 담겨있고 이를 통해 최 전 대통령 부부의 인간적 면모가 정감 있게 전해온다.
최 전 대통령의 인간적인 면을 보여주는 또 다른 일화 하나. 광주민주화운동(당시에는 광주사태로 부름) 이후 시국이 어수선한 1980년 초 영등포 경찰서에서 한 청년이 난동을 피웠다는 보고가 왔다.
만취한 20대 초반 청년은 파출소에 들어와 집기를 부수며 난동을 부리면서 "이 나라와 국민들은 양심도 없고, 고마움도 없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청년의 할아버지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을 하느라 가정을 돌보지 못했고, 청년의 아버지는 학교에도 다니지 못해 막노동판을 전전하다 젊은 나이에 죽었으며, 남편이 죽자 청년의 어머니는 자식을 버려둔 채 집을 나갔고, 조부모가 그 청년을 키운 것이다.
이런 사정이 담긴 보고서를 읽은 최 전 대통령은 권 비서관을 불러 조용히 금일봉을 건넸다. 물론 자신의 봉급을 쪼갠 것이다. 당시로서는 큰 액수가 담겨있었다.
아무도 모르게 전달하라는 대통령의 지시를 수행하기 위해 권 비서관은 북아현동의 허름한 무허가 판잣집으로 찾아가 '대통령의 촌지'를 남몰래 전했고 노부부가 '어렵게 살고는 있지만 일제치하보다는 행복하다'면서 '대통령님께 누를 끼치게 됐다'고 눈물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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