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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2/31 사회통합을 위하여
  2. 2009/05/19 좌파는 무엇이고 우파는 무엇인가?

얼마 전,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로 ‘사회통합위원회’가 공식 출범했다. 이것은 우리 사회가 그만큼 갈등과 대립으로 분열하고 있다는 반증인 것이다. 더 이상 분열로 치닫게 되면, 국가라는 공동체가 위험한 지경에 이를 수 있다는 현실 인식 때문이기 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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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통합위원장으로 임명된 고건 전 총리

 
맹자 3편 4절 공손추장구(公孫丑章句) 하편, 득도다조장(得道多助章) 제1장에는, "천시(天時)는 지리(地利)만은 못하고, 지리(地利)는 인화(人和)만은 못하다” 는 말씀이 있다. 이 구절은 전쟁을 두고서 한 말이다. 하늘이 주는 이로움은 땅이 주는 이로움보다 못하고, 땅이 주는 이로움은 인화보다 못하다는 것이다. 천군만마가 있어도 땅에서의 이익을 얻지 못하고, 군사들이 단결하여 싸우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뜻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인화란 단순히 서로 단결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이 기꺼이 나라를 위해 스스로 협력하는 마음까지 얻어 내는 것을 포함하는 의미다. 그만큼 국가나 공동체의 지도자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통합은 어디부터 시작해야 할까? 단언컨대 이념의 양극화 극복이 우선되어야 한다. 하지만 사회통합위원회의 인선을 두고서 아무개는 노무현 정부 시절 사람이니, 좌파니, 군사독재 시절의 극우니 하는 등의 시비가 나도는 것은 유감이라 할 것이다. 기실 좌파 우파라는 흑백논리는 적어도 오늘날과 같은 글로벌 시대엔 별다른 의미가 없다. 이는 매우 천박하고 해괴한 주장에 불과하고 나라를 노쇠하게 할 뿐이다. 오늘날은 한 국가의 지도자이든, 정책이든 좌파적 가치와 우파적 가치가 혼재될 수밖에 없는 정치경제적 상황에 놓여 있다. 예컨대 아담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에 대한 케인즈주의가 그것이고, 케인주주의에 대한 신자유주의가 또한 그것이다. 이것의 대표적인 나라가 영국이고 고든 브라운 총리의 집권 노동당이다.

우리나라의 헌법적 기본원리는, ‘국민주권의 원칙’, ‘자유민주주의’ 그리고 ‘사회국가의 원리’ 등으로 구성 되어 있다. 혹자는 ‘사회국가’라는 말만 들어도 지레 경을 칠 것이다. 사회국가란, 사유재산제를 보장하고 자유경쟁의 원칙과 시장경제질서를 근간으로 하되, 사회복지, 사회정의, 경제민주화를 가미한 경제 질서를 일컫는 말이다. 이것의 대표적인 정책 중의 하나가 ‘국민건강보험’이라 할 수 있다.

다시 살피자면, 이념양극화와 국론 분열의 가장 큰 원인은 분단이라는 원죄가 자리 잡고 있다. 평화학자 요한 갈퉁에 따르면 전쟁으로 인한 트라우마는 40년 정도 지속된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는 60년이 되어도 여전히 전쟁의 트라우마에서 치유되지 않고 갈등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이렇듯 분단이라는 원죄와 함께 북한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른 사회적 갈등은 때로는 섬뜩할 정도다. 하지만 우리가 자유민주주의를 신봉하고 추구하는 이상 북한을 보는 시각은 각각 다르고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북한과의 화해협력을 주장하는 국민들도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각의 다양성에 대해 시쳇말로 수구골통이니 좌파빨갱이니 하는 언설은, 무지의 소치이자 경박함의 극치이고 어쩌면 그 사람 인간성 자체가 문제이다.

이참에 한 가지 짚고 가야할 게 있다. 사회통합을 위해서는 당연히 이념의 대립과 분열을 치유해야한다. 이와 함께 소외된 이웃을 위한 ‘나눔의 문화’를 정착시키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이것이 사회통합의 촉진 변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체로 우리 사회는 개인과 기업 모두가 나눔에 대한 관심이 비교적 적다. 연말이 되면 그저 생색내기나 일회성 이벤트에 그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며칠 전이 크리스마스였다. 예수님 탄생을 기념하는 날이다. 예수님은 고아와 과부에게 관심을 가지라고 했다. 그리고 “누가 강도 만난 자에게 이웃이 되겠는가?” 라고 우리에게 물었다. 진정 사회를 통합하고 상생하려면, 소외된 이웃과 함께하지 않고서는 그저 공허한 메아리에 그칠 뿐이다. 때문에 적은 것이라도 이웃과 함께 나누려는 노력과 실천이 필요하다.

또 한 가지를 덧붙이자면, 지역주의의 문제이다. 어느 나라이든 어느 정도의 지역감정은 존재한다. 그러나 그것이 정치적 패권주의로 이용되는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아직도 경상도와 전라도가 혼사하는 것을 꺼리고, 선거에서 투표의 행태도 마찬가지다.

이제부터는 사회통합 차원에서 경상도 전라도라는 지역을 따지지 말고 그 정당이나 그 사람이 어떤 가치를 지향하는가를 보고 투표하도록 하자. 그래서 좌파니 우파니, 경상도니 전라도니 하는 구태의 종지부를 찍는 사회통합의 원년이 되게 하자.

중국 정치지도자 주은래가 자주 인용한 말이다. 바로 구동존이(求同存異)란 것이다. 가치와 뜻이 동하면 구하고, 다르면 존중한다는 뜻이다. 사회통합이 절실한 우리가 마음에 한번쯤은 새겨야 할 문구가 아닐까 싶다. 끝으로 하나님 사랑 이웃사랑이라는 성경의 가르침에 합하여 사회통합이라는 공의에 우리 교회가 함께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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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에 대해 내가 가져야 하는 최소한의 책임을 다 하고자 하고
북한과 통일문제에 대한 관심과 참여, 그리고 작은 봉사를 공동체와 함께
일구어 나가고자 그저 소박함으로 하루을 일하고자 한다.
2009/12/31 13:32 2009/12/31 13:32
Posted by 김기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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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라는 말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널리 쓰이는 개념이다. 아울러 진보라는 용어도 좌파와 혼용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좌파, 우파 그리고 진보, 보수의 개념은 매우 다의적이고 추상적일 뿐 만 아니라 혼용하기 때문에 한번쯤 개념을 정립 해볼 필요가 있다.

좌파라는 말이 처음 사용된 것은, 프랑스시민혁명 전후이다. 1789년 5월 프랑스 절대왕정하에서 소집된 제 1차 삼부회의세서 제 1신분인 성직자계급, 제 2신분인 귀족대표는 국왕을 중심으로 오른쪽에, 제 3신분인 시민계급은 ‘Left’ 즉 왼쪽에 앉았다는 데서 유래하였다.

좌파의 개념 논의를 살펴보건대, 박효종, 유팔무는 좌파와 진보를 혼용하고 있다. 그런데 좌파와 진보를 동일한 개념으로 사용하기에는 무리가 따르고, 현실적으로도 불일치가 발생한다. 이에 대해 이진우는 좌파와 진보를 구분한다. 좌파는 기득권을 반대하고 다수의 이익을 위하고, 우파는 기득권 유지를 확대하고 소수의 이익을 취하려는 것이며 이는 양자가 권력관계를 통해 규정된다고 지적 하고 있다. 또한 그는 진보는 사회적 모순을 변혁하고자는 전진적 사상이고, 보수는 전통과 관습을 중시하며 사회 변혁을 회피하거나 지연하려는 사상이다. 때문에 진보와 보수는 ‘바람직한 사회를 성취하는 방법’을 기준으로 구분된다고 규정한다. 결론적으로 좌파, 우파는 ‘기득권’ 과 '이익'을 기준으로, 진보 보수는 ‘변화’에 대한 입장과 태도로 구분하기 때문에 양자를 혼용하는 것은 옳지 않다.

우리가 정치적 이념성향의 위치를 정확히 설정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지금까지의 논의에 추가적으로 ‘보비오’(Bobbio)의 논의로 접근하고자 한다. 보비오는 ‘자유주의와 권위주의’ 라는 개념을 통해 자유에 대한 상이한 태도가 좌파, 우파 모두에게 온건파와 극단파를 구분할 수 있는 적절한 기준이라고 한다. 동시에 평등- 불평등과 ,자유주의- 권위주의라는 두 가지 기준에 따라서 네 가지 스펙트럼으로 분류하는데, 그것은 극좌, 중도좌파, 중도우파, 극우파로 구분하였다. 한편 기든스는 보비오의 평등에 대한 모호성즉 어느 정도의 평등을 수용하느냐에 따른 네 가지 분류의 모호성을 뒷받침 할 수 있는 ’정부개입의 선호‘ 를 첨가하면서 개념을 세련화하였다. 이상으로 간략하게 국내외 대표적 학자들의 견해를 중심으로 좌파에 대한 개념을 검토하였다.

사진출처: 연합뉴스 @ Yonhap news

그런데 우리 사회는 좌파 우파 논쟁이 저자거리에서나 볼 수 있는 이전투구의 행태를 띠고 있다. 좌파 우파는
저자거리에서의 논쟁보다는 사회과학적인 분석의 토대위에 쟁론을 벌려야 하는 것이다. 특히 저널에서 마구잡이로 쓰고 있고 다분히 정치공세적인 것이 문제이다.
영국의 블레어 총리가 이끈 노동당은 지금도 집권당으로 온전히 자리 잡고 있다. 우리가 비록 분단이라는 불행을 안고 있지만, 좌파 우파를 흑백논쟁으로 치닫는 과거로 돌아갈 필요는 없다. 특히 글로벌 시대를 사는 대한민국은 경도된 이념과 그 논쟁에 함몰되지 말고 열린 마음으로 세계와 미래를 바라보아야 한다. 우리가 서로 싸우기에는 세계는 너무 빨리 변화하고 무한 경쟁의 시대이다. 그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좁은 시야에서 벗어나야 한다. 결코 미래는 막연하게 우리에게 희망을 가져다 주지 않는다. 역사는 정직하고 우리가 흘린 땀 만큼의 대가가  있을 것이고 누릴 것이다. 역사를 두려워하고 역사를 보는 안목을 키워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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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에 대해 내가 가져야 하는 최소한의 책임을 다 하고자 하고
북한과 통일문제에 대한 관심과 참여, 그리고 작은 봉사를 공동체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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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19 01:06 2009/05/19 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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