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주의'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0/02/09 기독교 NGO 직원의 특징에 대하여 (2)
  2. 2009/10/12 다산 정약용과 한국 교회
  3. 2008/09/25 누가 이슬람을 욕하는가?

적어도 삼성라이온스에서 선수로 뛴다는 것은 야구선수로 성공한 것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연봉 억대를 받고도 불안한지 소위 스타 아내들의 부업에 대한 기사를 얼마 전에 읽었다.

그 주인공은 진용용 선수인데, 나는 솔직히 진갑용이라는 야구 선수를 잘 모른다. 그의 아내 손미영씨는 더더욱 모르는 사람이다. 그런데 진갑용 선수의 아내가  삶을 사는 자세는 귀감이 되고 배워야할 충분한 가치가 있다. 특히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삶을 사는 데 새겨야 할 인생 이야기이기도 하다.

"선수 아내들이 자주 찾아와서 사업 어떻게 하면 되냐고 물어 봐요." 진갑용(36·삼성 라이온즈)의 아내 손미영 씨는 요즘 선수 아내들의 사업 관련 문의에 답하느라 바쁘다. 5년 전 연탄 불고깃집을 시작으로 2년 후 커피숍까지 열며 지금은 두 가게를 운영하는 사장이 됐다. 두 가게 모두 월 매출 1000만 원이 넘을 만큼 자리를 잡았고, 덕분에 짭짤한 수입을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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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 씨는 "처음엔 아르바이트부터 시작했다"고 말한다. 불고깃집 체인을 따내고자 한 외식업체 대표를 만났는데 손 씨를 본 그 대표가 '장사할 인상이 아니다'라고 말하면서 거절했다고 한다. 결국 손 씨는 그 불고깃집 식당에서 주방 일부터 시작해 서빙까지 해가며 충분히 식당을 운영하고도 남는 '악바리' 주부라는 사실을 증명했고, 3개월 일한 끝에 체인점의 운영권을 따냈다. 이후 선수 아내라는 걸 알면 웃돈을 받고 물건을 팔거나 세상물정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 선수 아내라는 것을 비밀로 하고 그저 생활비가 급한 주부 연기를 하며 물건 값을 깎기도 했다는 것.

이 기사를 읽고 내 자신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기회가 되었다. 기독교 NGO를 운영하고 있는 나에게 몇 가지 감회를 함께 준다. 이런 자세로 직원이나 운영하는 자가 함께 뭉친다면 반드시 성공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다. 이글은 특정인을 겨냥하여 비난하거나 매도하는 글이 아니다. 바로 나의 문제에 대한 비판과 반성이요, 나의 충고이자 고백하는 글이다. 그래서 이런 글을 여러 사람들이 읽고 마음에 새기길 바라고 또 기록에 남겨 훗날에도 교훈이 되었으면 한다.

통일교육문화원이 햇수로 10년이 되었다. 그동안에 그리 많지는 않지만 여러 직원이 이곳을 다녀갔다. 그런데 대부분이 나를 실망시키고 나간 사람들이다. 물론 NGO를 운영하는 사람도 책임이 있다. 그중에 1% 정도는 묵묵히 박봉에도 불구하고 성실히 일한 사람들이라 할 수 있다. 그사람들이 통일교육분야에 있어서 명실공히 최고의 반열에 오른 오늘날의 통일교육문화원을 이루는데 당당히 일조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차제에 그들은 무조건 타인을 비난하기 보다 먼저 나를 포함하여 기독교인들의 특징에 대해서 간단히 몇 자 적고자 한다.  

먼저 세상은 야구 선수 아내 손씨처럼 만만치 않은 것이라는 것을 먼저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험한 일에도 자신을 낮추고 성실하고도 헌신적으로 일하는 자세가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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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직원은 모두가 크리스천이다. 그런데 몇 가지 특징이 있다.아주 간단히 핵심적인 내용만 적고 내 스스로의 반론이든 타인의 반론이든 다음 기회에 얼마든지 받도록 하겠다.

우선,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한다. 혹은 어울리지 않는다. 사람이 살다보면 비 기독교인과도 만나게 된다. 심지어 개인적으로는 무슬림과도 만난 경험이 있다. 그것도 시아파이다. 그런데 내가 10년 동안 지켜본 직원들 이른바 믿음 좋다는 기독교인들인데 공통점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사회성’이 없다는 것이다. 가령 부득이 맥주 한 잔 할 자리가 있거나, 아니면 기쁘고 즐거운 날이 있어 파티가 열렸다고 하자. 이런 자리에서도 이들은 크리스천이라는 이유로 우선 일체의 술을 금한다. 참으로 고대의 율법보다 더하고 무슬림보다 더한 것이다. 그러니 자연적으로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깊이 있는 대화도 나누지 못한다. 술을 마시는 사람도, 크리스천도 그 자리가 어색하고 서먹하기는 마찬가지 일 것이다. 크리스천끼리라도 흉금을 터놓고 인간관계를 맺는 사람의 드물다. 물론 술을 마시지 않고도 잘 놀 수 있다는 것도 알 안다. 그런데 대체로 술마시는 사람을 아주 나쁜 사람으로 보고 자신은 선한 사람으로 여기는 사람도 더러 있다. 술이 모든 믿음의 기준이 되는 것 같다.

두 번째는 자신에게 이익이 없다면 공동체가 어려운 상황이든 말든 관계없이 이익을 좆아 가버린다. 물론 자신의 이익을 좇는 다는 게 기독교인이라고 별반 다르지 않겠지만, 매주 일요일마다 교회에서 배우는 것은 그러한 가치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매일 아침 혹은 적절한 시간에 성경을 읽고 기도의 시간을 가지는 사람들이기에 비교적 세상의 가치보다는 영적 가치를 좇아 사는 것이 더 합당하기 때문이다.

세 번째 세상과 사회를 너무 모른다. 한마디로 초중학교 수준정도라면 과언일까? 세상물정을 모르고 사회에 나오니 때로는 그러한 것들이 상대를 피곤하게 한다. 그러면서 교회가 하는 행사가 있으면 직장일은 물론이고 열일을 제쳐두고 먼저 뛰쳐 나간다. 아무리 교회일이 중요하다지만 자신의 일터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결코 나쁘지 않다. 예수께서 안식일과 관련하여 하신 말씀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믿음 좋다는 것과 광신하는 것은 전혀 다른 것이다.

  네 번째는 신의 혹은 의리가 없다. 금방 이랬다 저랬다하고 돌아서버린다. 그리고 공동체가 어려워도 함께 감당하지 않으려 한다. 그러니 그 사람에게 그다지 믿음이 가지 않는다. 우리가 흔히 의리라는 것이 있다. 일본에서는 의리를 기리하고 한다. 이것이 잘못인식되어 조폭 세계에서만 의리가 있는 줄 아는데, 사실 의리라는 것은 '인간이 인간으로서 마땅히 해야할바를 하는 것, 또는 그것을 지키는 것' 이 바로 의리이다. 일본인들은 이것을 기리라고 한다.

 마지막으로 지나치게 교회와 성경에 매달린다. 다시 말해 세상의 이치란 기도와 성경도 중요하지만 땀흘려 스스로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혹자는 그것이 바로 기도요, 기도와 노동이 다르지 않다고도 한다. 그러한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문제는 일부 크리스천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한국교회의 문제이기도하다.

특히 라이프 스타일이 단조롭고 하나의 교의(교리적 가르침)에 편협되어서인지 업무능력이 떨어지고 힘든 것이나 어려운 일을 잘 견디지 못한다. 그리고 자신을 헌신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특별히 다른 종교를 믿거나 아예 믿지 아니 하는 사람들보다 인간성이 다듬어진 것도 아니다. 또 노래를 부르거나 들어도 찬송가나 복음가요를, 책을 읽어도 기독교 서적을, 영화를 봐도 기독교 영화를, 여행을 가도 선교지를 가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본다. 게다가 정치적으로는 극우에 가깝고 나라와 민족을 위한 고민이나 헌신을 더더욱 없다. 통일문제도 마찬가지이다. 거의 1950, 60년대 수준의 북한관과 통일관을 가지고 있다. 그러면서 일요일부터 시작하여 매일 아침 새벽기도를 하고 일주일 모두를 교회에 빠지지 않고 나가는 사람도 상당수다. 그리고 때로는 그것이 의로운 것인 양 잘난 채 하기도 한다. 한마디로 가관이다.

한 가지 더는 목사의 말이라면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하게 여긴다. 물론 비판을 위한 비판을 하자면 한이 없다. 특히 연장자나 주변 일가친지, 설날과 추석같은 명절, 심지어 직장 상사에게 어떻게 말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조차도 잘 모르고 있다. 또 더 문제는 공동체안에서 잘 소통할줄 모르거나 소통하지 않는다.

허구헌날 성경과 교회를 과잉으로 생각하며 살다보니 교회 일 외는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조차 모르는 경우가 왕왕 있다. 그리고 자기 계발에도 관심이 적다. 이런 사람들이 세상을 변화시키고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된다고 하니 개가 들어도 웃을 일이다. 우리가 북한만 공산주의에 세뇌되었다고 비난할게 아니다. 이들이 율법에 세뇌되어 직장 공동체와 사회에서 누가 되고 피해를 끼친다는 사실을 모르게 있다. 나를 우선하여 말하건대 개독교라는 말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닌 것 같다. 내 자신부터 새롭게 되도록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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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에 대해 내가 가져야 하는 최소한의 책임을 다 하고자 하고
북한과 통일문제에 대한 관심과 참여, 그리고 작은 봉사를 공동체와 함께
일구어 나가고자 그저 소박함으로 하루을 일하고자 한다.
2010/02/09 02:13 2010/02/09 02:13
Posted by 김기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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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기환 2010/02/09 02: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진은 진갑용 선수 가족 사진이다.

  2. 비밀방문자 2010/05/27 09: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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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산에 대해 깊이 알지 못한다. 깊이 알기에는 그의 사상과 도가 너무 높기 때문이다. 그 사람을 알기 위해서는 그가 걸어온 길이나 사상을 보게 된다. 하지만 그 사람의 생애를 알지 못해도 문장 한 줄이 심안을 뒤흔드는 경우가 왕왕있다. 내게 있어서 다산이 그런 존재이고 그것이 그를 잘 알게 해주는 대목이다. 다산의 사상에 관해서는 그리 길지 않는 문장을 읽고 그를 흠모하게 되었다. 바로 지금 이 시간에도 그에 관한 글을 읽고 쓰고 있다. 다산은 18년 유배 생활에서 해배되어 고향인 남양주 마현에 돌아왔다. 그때 쓴 목민심서의 서문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성현의 길을 원래 두 가지 길이 있다. 사도는 각기 만백성을 가르쳐 각기 수신하게 하고 대학에서는 국자를 가르쳐 각기 수신하고 치민하게 하였으니 치민하는 것이 목민하는 것이다. 그런즉 군자의 학문은 수신이 그 반이고 나머지 반은 목민인 것이다” 목민심서의 서문에서부터 머리를 패는 듯한 신선한 충격과 명쾌한 정의는 읽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다산은 목민(牧民)을 치민(治民)이라 하였다. 치민이란 백성을 사랑하고 부양하는 것이다. 때문에 치민이 단순히 권력을 거머쥐고 백성을 다스리는 것은 더욱 아니다. 다산은 평생을 학문에 정진한 인물이고, 유배지에서만 500여 권의 책을 저술하였다. 특히 유학의 대가이고 나아가 의학, 과학, 문학에 까지 폭넓은 학문을 하였다. 다산은 성현은 자신을 수신하는 것이 반이고, 특히 司徒는 대학에서 만백성을 가르쳐 각자가 수신할 수 있게 해야 함을 강조하였다. 이것은 단순히 원시 유가가 강조하는 修己(수기) 만으로는 사회적 책무를 다 할 수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기와 치민의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한 것이다.

내가 보건대 다산의 사상은 오늘날 한국교회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다산이 오늘날 한국 교회의 모습을 바라본다면, 당시 문약에 빠진 성리학을 강하게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하였듯이 분명히 이를 지적하고 비판하였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통탄하였을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다산은 조선에서 몇 안 되는 유학의 대가이다. 때문에 당연히 공자와 맹자의 정치사상을 궤고 있었다. 공자의 정치사상은 크게 보아 행인과 정명이다. 간략이 말해 行仁은 인을 실천하는 것이고, 정명은 사회적 존재로써의 책무이다. 다산은 인과 정명(正名)만으로는 부족하다고 하여 보조적 수단인 ‘덕례형정德禮刑政)’ 을 제시 한바가 있다. 결국 다산은 이상에 치우치고 공리공담이 아닌 실제 생활에서의, 그리고 실제 백성에게 진실로 유익이 되는 정치를 갈구한 것이다.

오늘날 대개의 교회를 보노라면 사회는 신음하고 있는데 오로지 성경적 문약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작 검소하고 가난해야할 교회는 부유하고 배가 부른데 세상과 사회는 가난에 빠져있다. 오직 기도와 전도만을 강조하고 컨텍스트(상황)에는 별 관심이 없거나 타성에 젖어 있다. 개인의 기복과 천국에는 관심이 많고 소외되고 곤고한 이웃에게는 관심이 적다.

 당시 다산은 저자거리에서는 백성이 굶어 죽어가고 있는 데 성리학의 원리 놀음에만 빠져있는 조선의 집권층에 대해 상당한 충격과 분노를 느꼈다. 그래서 그는 성리학의 관념적 심성논의에서 벗어나고자 하였고 또한 내적 심성을 닦고 도리를 추구하는 것에도 비판적이었다. 공허한 논리가 아닌 보다 백성을 위해 현실적이도고 실제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이었고 그것의 대표적인 것이 치민 혹은 치인 그리고 목민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은 社會가 교회를 걱정하는 시대다. 영적 비만에 걸린 한국교회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이기도하다. 하지만 사회가 교회를 비판해도 당연하다는 듯 아랑곳 하지 않은 교회. 오직 교회 안에서의 예배와 기도와 찬송과 봉사와 성경공부에만 목을 매는 교회.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지 못해도 자책하기보다 아무렇지도 않고 문제가 없다고 느끼는 교회. 정녕 변화는 찾아보기 힘든 교회. 이것은 마치 다산이 산 조선시대 때 백성은 곤고하다 못해 굶어 죽는데 성리학의 관념적 심성논의에만 골몰하는 권력가들이나 오늘의 교회가 별반 다르지 않다.

이를 본 다산이 통탄하며 일침을 가한다. 한국 교회여! 복음은 축복이지만 한편으로는 고난이고, 성경은 읽고 기도만 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로 하여금 행하고 이웃과 함께하는 것이란다. 다산, 그는 18세기와 19세기를 살다 간 사람이다. 당시 가톨릭 신자였고 그로 인해 많은 정치적 박해는 받은 인물이다. 역사는 이래 저래 아이러니하다. 종교개혁 주일을 앞두고 성리학의 관념적 심성 논의에 골몰하고 백성과 사회는 안중에 없이 그저 문약에 빠진 조선의 지도층과 오늘날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다고 자처하는 자들이 성경적 문약에 빠져 백면서생이 되어가는 한국 교회를 바라 보니 다산이 다시금 가슴깊이 다가온다.


아울러 진정한 실용을 생각해보는 가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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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에 대해 내가 가져야 하는 최소한의 책임을 다 하고자 하고
북한과 통일문제에 대한 관심과 참여, 그리고 작은 봉사를 공동체와 함께
일구어 나가고자 그저 소박함으로 하루을 일하고자 한다.
2009/10/12 12:10 2009/10/12 12:10
Posted by 김기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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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이나 설이 주일과 겹치는 때가 더러 있다. 나는 일년에 두어번 고향에 내려간다. 사실 명절도 명절이지만 올해 83세의 어머니를 뵙는 것이 우선이다. 83세의 어머니! 나이가 젊어도 경제력없고 힘없으면 별 볼일 없는 사람으로 낙인 찍히기 십상인데, 건강하지 못한 노구 흰머리에 잔주름 누추한 옷매무새를 보고 누구 하나 반겨주는 사람없는, 그래서 밤이면 처절하게 외롭게 보낼 것이다. 그러다가 간혹 못난 막내놈이 어떻게 지낼까하는 생각에 뒤척일 때도 있을 것이다.

나도 인간이지라 때로는 어머니가 싫고 미울때가 왜 없었겠는가. 막상 지금 같은 집에 산다면 그리움보다는 그야말고 일상속에서 오는 애증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기에 별로 정이 없는 형님이지만 어머니를 모시는 것에 고마움을 전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추석에도 주일이 겹쳤다. 늘상 가던 울산교회 대신 울산시민교회란 곳에 갔다. 그날 설교 제목은 ‘죄의 고백으로 형통하라’ 는 것이었다. 그리고 주보의 칼럼 '시민편지'에서 명절에 술자리를 조심하라는 내용이 빼곡이 적혀 있었다. 물론 일견 타당한 말도 있었다.

몇가지 기억나는 대목이 있다. 술과 죄를 연결시켜 강조하면서 여타 인간의 죄의 문제를 적나라하게 계속해서 강조했다. 특히 10여년 전 희대의 살인극 지존파 사건을 예화의 하나로 들었다.


우선 너무나 잘 알듯이 인간인 이상 누구나 죄의 문제를 혼자서 해결할 수 없다. 아무리 선하게 산다해도 부지불식간에 죄를 범하게 된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생각하기도 싫은 끔직한 살인사건이 왜 자꾸 일어나는 것일까? 이렇게 잔악무도하고 점점 더 엽기적 범죄가 일어나고 있는데 교회는 어떤 역할을 하고 있을까? 병들어 가는 세상를 목전에 바라보면서 함께 하지 못하는 교회가 호언할 게 있는건가? 아니면 적어도 같이 아파 해본 적이 있는지 궁굼하다. 교회가 자신을 뒤돌아 보지 못하고, 교회가 병든 세상을 위해 빛지 되지 못하면서 무슨 얼굴로 큰소리를 치는 지 알 수가 없다.


지존파 사건, 다시는 있어서는 안된다. 그런데 그 사람들을 죽여야 할 사람으로 생각만 하지 말고, 그 사람의 속으로 한번쯤 들어가 보라. 사랑의 눈길이, 사랑하는 가슴과 손길이 없는 데 그것이 진정 그리스도인인가? 우리도 인간이니 살다보면 남을 정죄는 할 수 있다. 그러나 사랑이 없으면 가식이고 무지이고 행패에 가깝다.



3살 때 어머니 잃었다. 9살 때 계모손에 자랐다. 14살 때 아버지가 죽었다. 15살 때 중학교를 중퇴 했다. 중국집에서 배달을 했다. 교통사고가 낫다. 일을 하지 못했다. 배가 고파서 음식을 훔쳐 먹다가 감옥에 갔다. 취직도 결혼도 못했다. 사회에서는 알아주지 않는다. 점점 각박해지는 세상 먹을 꺼리도 없는데 누구하나 관심을 갖는 사람이 없다. 오히려 업신여기고 손가락질 한다.  이러한 사람에게 너 고생했다고 한번 위로해주고 같이 울어줄 수 있는지 생각해 보라.  이제 술 주정뱅이라고 욕만하지 말고 왜 그들이 술을 마셔야하는 지를 그들에게 따듯한 눈길을 한번 보내보라. 그들이 그러한 눈길과 손길이 얼마나 그리운지 모른다. 그들은 사랑과 정에 배가 고파 그 허기를 매우려 한잔 술을 마시는 것이다. 그러다 그러다 지치면 삶을 포기하는 것이다.

글을 맺고자 한다. 인간이 죄를 고백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인간인 이상 죄의 굴레를 스스로 빠져 나올 사람은 없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고자 하는 것이다. 나는 죄가 없다. 나는 깨끗하고 고상한 사람이다. 그런데 너는 못배우고 술마시고 죄많은 하류 인생이라는 정도의 시각을 가졌다면 교만하기 짝이 없는 사람이다. 그들이 얼마나 의 고단을 삶을 살고 좌절하고 있는지 그들을 위해 한번쯤 애통해보기 바란다.
나는 그 교만한 사람이 오히려 더 안타깝다. 하나님 앞에서 누가 누구의 죄가 더 많다고 오십보 백보 하고 있는가.
이것이 나의 일, 내 형제, 내 가족의 일이라고 생각해 보기 바란다..


어쩌면 가소로는 일이다. 술마시지말고 노래방도 가지 말고 추석에 찬송가부르고 기도하라는 말씀......참으로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여간 힘들말이 아니다. 이런 질 낮은 설교를 들으러 주일을 지킨다는 이유로 우리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성수' 하고 있다. 솔직히 한심한 생각이 들때도 있다.


먹고 살기가 얼마나 힘든지, 대한민국 땅에서 적어도 남에게 큰소리 치고 살려면 얼마나 처절하고 고단한 삶을 살아야 하는지 그속을 들어가보길 바란다. 아니 그속을 좀 알기를 원한다. 수많은 좌절과 실패와 편견과 고독의 벽에 부딪혀 한치 앞이 안보이는 지독한 삶 속으로 단 한번이라도 이해하려 해보았는가를 묻고 싶다. 왜 그들이 술을 마시고, 왜 그들이 사고를 치고 왜 감옥으로 가야 하는가? 그들도 똑같은 고귀한 존재들이다. 내 품안에 안고 조용히 기도해보라. 그들은 수많은 날들을 가슴에 한을 품고 살아야했고 눈물로 밤을 세워야 했던 사람들이다. 함부로 돌 던지지 말아야 한다. 

내가 보기엔 부자 세습을 하는 K 교회의 K 목사 형제, 갑제형, 대중형 이런 사람들은 대학원까지 나온 많이 배운 사람들이고 술 안 먹는 목사들이고 돈도 있는 사람들이다. 이병박 대통령도 장로가 아닌가.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런 고귀한 사람들로부터 매우 힘들어하고 이들로 인해 좌절하고 실의에 빠지기도 한다는 것이다. 누가 누구에게 돌을 던져야 하는 것인지 곰곰이 생각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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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교육문화원은 2002년 1월 개원
2002년 3월에 비영리 민간단체 등록(통일부 제31호 : 승인일 2002.3.28)
2004년 11월 사단법인 등록(통일부 제 141호 : 승인일 2004.11.23)
2005년 7월15일 재경부 지정기부금단체로 등록되었습니다.
2008/09/25 00:08 2008/09/25 00:08
Posted by 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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