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통일'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09/09/22 이탈리아도 슬펐다 (1)



이탈리아도 슬펐다

 

프랑스에 혁명이 일어났다. 그리고 세상이 바꿨다. 

그 과정은 한마디로 아귀지옥이었다.

당시 왕족 일파와 성직자들은 엄청난 토지를 소유하고 특권을 누렸다.

귀족과 성직자이외 나머지는 속된 말로 개털이었다.

그 개털들을 이른바 ‘평민’이라 부른다.

법률가, 의사, 언론인, 상공업과 금융업 등등.....

그런데 오늘날 개털과는 너무 다르다.

당시 이들을 부르주아라고 불렸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가리발디의 부인 여전사 아니타 동상


그래서 프랑스 혁명을 프랑스 시민혁명이라고도 하고, 부르주아 혁명이라고도 한다. 이것

은 막스의 관념이 다른 것이다.

여기에서 좌니 우니 하는 레토릭의 진원을 발견할 수 있다.

삼부회의와 국민회의에서 그 유명한 좌파라는 말이 그것이다.

인권선언도 나오고 정치는 공화정으로 발전하고 헌법도 만들어졌다. 

그러나 지롱드와 자코뱅은 극력하게 치고 받고 공포정치는 온몸의 살이 떨릴 정도였다. 

혁명은 끝나는 듯했다.

1799년에 나폴레옹이란 무명의 장교가 나타나 전 유럽을 휩쓴다.

그는 엘바에 갇혔으나 다시 프랑스 국민의 환영 속에 파리로 돌아온다.

그 중간은 생략하자. 나폴레옹은 몰락했다.

춤추는 파티라 했던 비엔나 체제가 수립되었다.

아탈리아는 꿈꾸었다. 조국의 통일을.

그러나 힘이 없었다. 힘을 갖기에는 프랑스와 영국과 오스트리아가 너무 셋다.

카부르는 북부 지역부터 통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프랑스 나폴레옹 3세를 이용했다.

오스트리아에게 맞짱도 떴다.

카부르는 사나이 중의 사나이 가리발디의 결단으로 사분오열된 조국 이탈리아 반도를 통

일하게 된다.

그는 프랑스 혁명에서의 자유와 민족주의를 열열이 사모했다.

그리고 과거로의 회귀에 대해서 단호하게 행동했다.

7월 혁명과 2월 혁명의 교훈을 잊지 않았다.

복고 왕정의 극단적 보수주의와 과격주의가 몰락하는 것도 동시에 보았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의 이탈리아는 고대 로마의 영광을 적게 나마 누리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우리도 통일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지 간파해야 할 때이다.



Writer profile
author image
분단에 대해 내가 가져야 하는 최소한의 책임을 다 하고자 하고
북한과 통일문제에 대한 관심과 참여, 그리고 작은 봉사를 공동체와 함께
일구어 나가고자 그저 소박함으로 하루을 일하고자 한다.
2009/09/22 11:58 2009/09/22 11:58
Posted by 김기환

트랙백 주소 :: http://rope.or.kr/blog/trackback/294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김기환 2009/09/23 00: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 677명이 이 글을 읽었다면 그것으로 행복하다.

[로그인][오픈아이디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