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위력 앞에 인간은 한없이 나약한 존재다. 또 인간이란 ‘이성’과 ‘합리’를 주창하기 이전에는 오직 ‘신의 피조물이었고, 자연의 일부’였다. 그러나 데카르트 이후 자연은, 인간의 이성에 의해 무한히 가공되고 지배되며 대상화되었다. 이른바 ‘기계론적 세계관’은 인간과 자연을 갈등과 대립의 관계로 만들었고 나아가서는 기어이 자연위에 군림하고 말았다. 근대 이후 오로지 과학 기술만이 인류를 구원할 수 있다는 환상과 오만에 빠져버렸다.
이렇게 수백 년 동안 근대의 자연 지배 패러다임이 한창 일 때, 마침내 세계를 진동케 하고 공포로 몰아넣은 대참사가 일어났다. 이것이 자연의 분노 이든 신의 공격이든, 참사의 원인에 골똘하기보다 대자연 앞에 겸허하고 반성하고 공존하라는 인간을 향한 일종의 옐로우 카드임을 알아야 한다. 차제에 일본 뿐 만 아니라 세계 도처에서 발생하고 있는 지진을 비롯한 자연재해는 물론 전쟁과 민중 봉기도 예사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비운의 도시 나가사키와 히로시마를 가본 사람이라면 핵폭탄의 위력과 참혹함을 잘 알 것이다. 당시 피폭 현장을 그대로 보존해 놓았는데 그 참상은 이루 말로 다할 수 없다. 한편 역사는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1945년 8월과, 2011년 3월의 일본 상황은 매우 유사하기 때문이다. 당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지역은 핵폭탄 투하로 도시 전체가 궤멸되었다. 추풍낙엽처럼 집과 사람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앙상한 건물 뼈대만이 황량하게 남았다.
지금의 도호쿠 지진 쓰나미는 후쿠시마와 센다이 주변 도시를 삽시간에 폐허로 만들어 버렸다. 노아의 홍수를 뺨치는 거대한 수마는 도시 전체를 아예 휩쓸어 버렸다. 두 개의 사건이 교차하면서 허망함과 비애와 연민을 동시에 느낀다.
일본은 세계 최초의 피폭국가이기에 누구보다도 핵의 파괴력과 위험성을 잘 안다. 현재 일본이 가동 중인 핵발전소는 대략 100기로 추정한다. 그중에 후쿠시마 핵발전소가 이번 지진으로 폭발사고가 났다. 일본은 지진이 자주 발생하는 지진대地震帶에 위치하고 있다. 이를 감안하면 외부의 핵 공격도 문제이지만, 자체 핵사고로도 큰 재앙이 될 수 있다는 걸 이번 사태가 잘 대변해 준다. G1이니 G2니 하는 국가도 이 같은 재앙 앞에는 속수무책이고, 하루아침에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될 수 있음을 알게 해준다.

에너지 정책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논하자. 현재 우리나라는 월성, 고리, 영광, 울진에 약 20기 내외의 핵발전소가 있다. 아직까지 큰 사고는 없지만 알게 모르게 작은 사고는 여러 번 있었다. 내 고향이 울산인데 동쪽으로는 월성, 남쪽으로는 고리 핵발전소가 있다.
또 울산에는 각종 화학 공장이 많아 자연재해로 인한 사고나, 다른 이유로 사고가 일어날 가능성을 배재할 수 없다. 행복인지 불행인지 과학이 발달한 만큼 더욱 위험한 세상이 되었다.
우리가 지진이라는 재앙에 대해서도 경계하고 관심을 가져야 하지만, 핵이 얼마나 무섭고 위험한지도 알아야 한다. 일단 핵분열 생성물질은 방사능을 내게 되는데, 이것은 수백 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죽음의 재’라고도 부른다. 만약 피폭을 당하면, 정도에 따라 다르지만 사망하거나 평생 치료를 받아야 하는 천형과도 같은 것이다. 히로시마, 나가사키 피폭자들이 지금까지 치료를 받고 있는 걸 보면 잘 알 수 있다. 결국 핵발전소는 국가의 에너지 공급을 위한 커다란 도박이고 모험 인 셈이다.
인간이 자연을 마음대로 가공하고 지배할 수 있다는 오만하고 발칙한 상상, 그 상상이 만든 거대한 아방궁은 일순간에 초토화 된다는 걸 이번 기회에 분명히 알아야 한다. 과학 기술로써 생크림 맛 보다 더 짜릿한 쾌락을 맛볼 수 있다지만, 그 쾌락은 인간뿐만 아니라 지구전체가 파멸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부터라도 과학 기술만을 맹신하고 자연에 패역을 부릴게 아니라 자연과의 화해를 통해 인간 · 자연 · 과학이 공존하는 평화로운 세상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비가 유난히 비가 자주 내리는 나가사키를 생각하며....
김기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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