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다산에 대해 깊이 알지 못한다. 깊이 알기에는 그의 사상과 도가 너무 높기 때문이다. 그 사람을 알기 위해서는 그가 걸어온 길이나 사상을 보게 된다. 하지만 그 사람의 생애를 알지 못해도 문장 한 줄이 심안을 뒤흔드는 경우가 왕왕있다. 내게 있어서 다산이 그런 존재이고 그것이 그를 잘 알게 해주는 대목이다. 다산의 사상에 관해서는 그리 길지 않는 문장을 읽고 그를 흠모하게 되었다. 바로 지금 이 시간에도 그에 관한 글을 읽고 쓰고 있다. 다산은 18년 유배 생활에서 해배되어 고향인 남양주 마현에 돌아왔다. 그때 쓴 목민심서의 서문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성현의 길을 원래 두 가지 길이 있다. 사도는 각기 만백성을 가르쳐 각기 수신하게 하고 대학에서는 국자를 가르쳐 각기 수신하고 치민하게 하였으니 치민하는 것이 목민하는 것이다. 그런즉 군자의 학문은 수신이 그 반이고 나머지 반은 목민인 것이다” 목민심서의 서문에서부터 머리를 패는 듯한 신선한 충격과 명쾌한 정의는 읽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다산은 목민(牧民)을 치민(治民)이라 하였다. 치민이란 백성을 사랑하고 부양하는 것이다. 때문에 치민이 단순히 권력을 거머쥐고 백성을 다스리는 것은 더욱 아니다. 다산은 평생을 학문에 정진한 인물이고, 유배지에서만 500여 권의 책을 저술하였다. 특히 유학의 대가이고 나아가 의학, 과학, 문학에 까지 폭넓은 학문을 하였다. 다산은 성현은 자신을 수신하는 것이 반이고, 특히 司徒는 대학에서 만백성을 가르쳐 각자가 수신할 수 있게 해야 함을 강조하였다. 이것은 단순히 원시 유가가 강조하는 修己(수기) 만으로는 사회적 책무를 다 할 수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기와 치민의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한 것이다.
내가 보건대 다산의 사상은 오늘날 한국교회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다산이 오늘날 한국 교회의 모습을 바라본다면, 당시 문약에 빠진 성리학을 강하게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하였듯이 분명히 이를 지적하고 비판하였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통탄하였을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다산은 조선에서 몇 안 되는 유학의 대가이다. 때문에 당연히 공자와 맹자의 정치사상을 궤고 있었다. 공자의 정치사상은 크게 보아 행인과 정명이다. 간략이 말해 行仁은 인을 실천하는 것이고, 정명은 사회적 존재로써의 책무이다. 다산은 인과 정명(正名)만으로는 부족하다고 하여 보조적 수단인 ‘덕례형정德禮刑政)’ 을 제시 한바가 있다. 결국 다산은 이상에 치우치고 공리공담이 아닌 실제 생활에서의, 그리고 실제 백성에게 진실로 유익이 되는 정치를 갈구한 것이다.
오늘날 대개의 교회를 보노라면 사회는 신음하고 있는데 오로지 성경적 문약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작 검소하고 가난해야할 교회는 부유하고 배가 부른데 세상과 사회는 가난에 빠져있다. 오직 기도와 전도만을 강조하고 컨텍스트(상황)에는 별 관심이 없거나 타성에 젖어 있다. 개인의 기복과 천국에는 관심이 많고 소외되고 곤고한 이웃에게는 관심이 적다.
당시 다산은 저자거리에서는 백성이 굶어 죽어가고 있는 데 성리학의 원리 놀음에만 빠져있는 조선의 집권층에 대해 상당한 충격과 분노를 느꼈다. 그래서 그는 성리학의 관념적 심성논의에서 벗어나고자 하였고 또한 내적 심성을 닦고 도리를 추구하는 것에도 비판적이었다. 공허한 논리가 아닌 보다 백성을 위해 현실적이도고 실제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이었고 그것의 대표적인 것이 치민 혹은 치인 그리고 목민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은 社會가 교회를 걱정하는 시대다. 영적 비만에 걸린 한국교회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이기도하다. 하지만 사회가 교회를 비판해도 당연하다는 듯 아랑곳 하지 않은 교회. 오직 교회 안에서의 예배와 기도와 찬송과 봉사와 성경공부에만 목을 매는 교회.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지 못해도 자책하기보다 아무렇지도 않고 문제가 없다고 느끼는 교회. 정녕 변화는 찾아보기 힘든 교회. 이것은 마치 다산이 산 조선시대 때 백성은 곤고하다 못해 굶어 죽는데 성리학의 관념적 심성논의에만 골몰하는 권력가들이나 오늘의 교회가 별반 다르지 않다.
이를 본 다산이 통탄하며 일침을 가한다. 한국 교회여! 복음은 축복이지만 한편으로는 고난이고, 성경은 읽고 기도만 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로 하여금 행하고 이웃과 함께하는 것이란다. 다산, 그는 18세기와 19세기를 살다 간 사람이다. 당시 가톨릭 신자였고 그로 인해 많은 정치적 박해는 받은 인물이다. 역사는 이래 저래 아이러니하다. 종교개혁 주일을 앞두고 성리학의 관념적 심성 논의에 골몰하고 백성과 사회는 안중에 없이 그저 문약에 빠진 조선의 지도층과 오늘날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다고 자처하는 자들이 성경적 문약에 빠져 백면서생이 되어가는 한국 교회를 바라 보니 다산이 다시금 가슴깊이 다가온다.
아울러 진정한 실용을 생각해보는 가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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