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간에 탤런트 문근영의 기부를 놓고 장안에 이런 저런 언설이 난무하고 있다. 소외된 이웃을 위해 익명으로 기부한 것을 칭찬은 고사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야할 퇴물인 색깔 논쟁으로 몰고 가는 이 회괴한 역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도대체 좌파란 무엇이 길래 대명천지에 쌍심지를 켜고 볼썽사나운 난장판을 벌이는 것일까. 원래 좌파(left)란 프랑스 혁명을 전후해서 사용되었다. 절대왕정시절 삼부회의에서 국왕을 중심으로 평민 계급이 왼쪽에 앉은 데서 유래되었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좌파․우파라는 것은 우선 매우 쟁론적 개념이다. 어디에서 어디까지가 범주인가부터 상대적이고 가치론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도양단식으로 좌우를 단정 짓기는 어렵다. 그러나 개념 정의를 위해 하나의 준거로써 정치․경제를 중심으로 분석 할 수는 있다. 예컨대 市場을 놓고서 평등과 자유, 개인과 집단 등 어느 것을 선호 하느냐에 따라 대략 판단할 수 있다. 그런데 평등, 분배, 공동체의 이익을 추구한다고 해서 친북 또는 공산주의라는 등식은 위협한 발상이자 일종의 이데올로기 편집증이다.
우리사회는 유럽과는 달리 일제식민지 시대와 해방 그리고 6.25 와 4.19 등을 거치면서 프랑스혁명 당시의 좌파보다는 진보한 이른바 좌익 운동이 역사적으로 존재한 것은 사실이다. 이러한 역사적 노정에서 항일독립운동을 전개하기도 했고 7, 80년대에는 군사독재와 맞서 싸우기도 했다. 또한 민주화운동 가운데서 반미와 통일을 외치기도 했다. 아울러 일련의 민주화 운동 혹은 사회변혁운동의 노정에서 북한과 관련하여 불미스럽고 한편으로는 불행한 역사를 감내해야만했다. 또한 흔히 반미란것도 미국의 패권주의와 헤게모니에 대한 반감이지 미국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문제는 오늘날 즉, 1980년대 말 동구 사회주의의 몰락과 독일통일로 세계차원의 탈냉전 시대를 맞이했고, 동북아시아 지역차원에서는 한․중, 한․소, 한․베트남 수교로, 또 남북 간에서는 6.15 라는 역사상 최초의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한반도에서도 완전한 냉전의 끝이 찾아 온 것이다. 때문에 1990년 이후 세계화와 지금의 글로벌이라는 새로운 시대가 도래 한 지 이미 오래라는 것이다. 이는 이념과 사상을 초월하여 지구촌이 하나로 통합되는 일종의 세계체제와도 같은 차원이다.
작금의 대한민국에서 벌이지고 있는 좌우논쟁을 유럽사회가 본다면 쓴 웃음을 지을 것이다. 굳이 북유럽 국가들을 보지 않더라도 영국은 블레어 총리에 이어 브라운 총리까지 10년이 넘게 이른바 좌파 정권이 건재하고 있다. 이웃 중국은 공산당이 일당독재를 하고 체제는 사회주의이다. 그런데 경제는 자본주의를 도입하여 GDP가 세계 4위를 차지하고 있다. 일본도 비록 강령에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삭제했지만 공산당이 의회에 진출해 있고 지방의회까지 진출한지가 오래이다. 이렇듯 오늘날 국제사회는 이념과 사상을 뛰어 넘어 경제적 실리를 가장 우선적으로 추구하고 있다. 그야말로 이념의 시대는 가고 오직 국가의 이익을 위해 상호의존과 협력의 글로벌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차제에 몇 가지 제언을 하고자 한다. 첫째 과거 전쟁과 분단이라는 역사적 불행을 무시하지는 않되, 역사의 프리즘을 1950년에 맞춰 터널 안에 갇히지는 말자는 것이다. 둘째, 우파는 善이고 좌파는 惡이다 라는 등식과 흑백논리는 삼가자는 것이다. 셋째 북한과의 화해와 협력을 통해 평화통일을 주장하는 사람을 좌파 빨갱이라고 도매금으로 매도하지 말자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건강한 공동체는 좌와 우, 또는 진보와 보수가 공존하는 것이다. 축구나 농구에도 오른발과 왼발, 오른손과 왼손 모두가 있어야 한다. 이것은 하늘의 이치이고 섭리이기때문이다. 그리고 극우 언론에서 천박한 색깔론을 국민에게 오도하는 것에 경도되지 않았으면 한다. 지금 남한사회를 북한체제처럼 공산화하겠다는 앙증맞고 발칙한 상상을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진정한 자유민주주의는 다양성을 존중하고 개방적이며 미래지향적이다. 그래서 폐쇄된 집단주의나 광기의 전체주의보다 휠씬 건강하고 아름다운 것이다.
김기환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