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식민지배가 종료되었다. 하지만 곧 남과 북으로 갈라졌고 6.25 라는 동족상잔을 치렀다. 1990년 드디어 냉전체제가 막을 내렸으나 남과 북은 여전히 대립의 칼날을 세우고 있다. 남북은 물론이고 ‘남남갈등’ 역시 잣아 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어언 65년 이라는 세월이 흘렸음에도 불구하고 한반도는 점점 평화와 멀어지는 느낌이다.
분단구조가 낳은 병폐가 여럿 있다. 그중에 아주 고약한 것이 바로 ‘이분법적 사고’ 혹은 ‘흑백논리’이다. 즉 나와 다른 것은 모두 악이고 쉽게 양극단으로 치닫는다. 이러한 사고는 개인적인 인간관계에서도 잘 나타나고 나아가 집단과 집단 그리고 사회 전체에 까지 팽배해 있다.
나와 다른 정치적 성향을 가진 사람, 나와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 나와 다른 지역의 사람은 나쁘고 악하다고 생각한다. 나와 다른 삶의 방식, 심지어 나와 다른 취향을 가진 것도 배척하는 지경이다.
그 다음으로는 눈에 보이는 ‘현상’만으로 판단하고 그 이면은 보지 않거나 보지 못한다는 점이다. 영등포역의 노숙자를 혐오하기보다 그들이 어떤 아픔과 사연이 있는지 굳이 알려고 하지 않는다. 또 절도범에 대해서 그를 증오하기 쉽지 그가 얼마나 배가 고팠는지는 헤아리지 않는다. 아니 헤아리지 못한다. 오로지 보는 것이라고는 눈에 보이는 ‘현상’에만 천착한다.
마지막으로는 ‘자신과 다른 것’ 혹은 ‘자신과의 차이’에 대한 배려가 없다. 오로지 자기 삶의 방식과 가치관에 맞추려 한다. 자신의 방식과 가치관에 맞지 않으면 상대를 배척하고 심한 경우에는 악으로까지 몰아 부친다. 내가 볼 땐 이러한 것도 일종의 정신적 편집증이다. 오늘날과 같은 글로벌 시대에 어떻게 자기와 같은 생각, 자기와 같은 가치관 그리고 자기와 같은 생활방식을 남에게 요구할 수 있는 지 안타까울 뿐이다.
분단구조가 빚어 낸 이 고약한 이분법적 사고, 나아가 현상만 보는 근시안적 태도, ‘다름’에 대한 이해 부족, 이 모든 사회편 집증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우리 사회는 더욱 각박해지고 참담해질 것이다. 그래서 흑백논리와 경도된 사고를 균형 있게, 현상만 보는 근시안을 그 이면까지 볼 수 있는 여유, 나와 다름에 대해서 한데 어우러지는 마음, 그러한 생각과 자세가 절실히 필요한 때이다. 그것이 아름다운 사회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첩경이다.
ps 사람은 본능적으로 자기 생각이 옳다고 느낀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상대의 생각도 옳다고 생각하자.
ppss 정치적 성향도 모두가 다르고 통일을 보는 시각도 모두가 다르다. 모두가 똑같은 생각을 한다는 것은 가설로조차 성립하지 않는다. 각자가 다르다는 것이 어쩌면 아름다운 것이고 자연의 법칙일지도 모른다.
○ 통일교육이 대내외적 정세 변화에 따라 영향을 받는가에 대한 분석은 대단히 어려운 작업이다. 그러나 이러한 분석에 앞서 통일교육이 정치논리에 휘둘린 과거에 대한 반성이 선행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정치상황변화가 통일교육의 독립변수로 볼 수 없지만,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치는 것이 사실이라면 그것이 어떻게 귀결되고 어떤 지향점을 갖는 지 따져봐야 한다. 아울러 그러한 동인이 합리성을 결여했다면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 왜냐면, 일례를 들어 시즘이나 나찌즘 그리고 일본의 군국주의 등의 영향을 받는 다는 것은 상당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결국 오늘날의 통일교육 역시 인간으로서 받아야할 기본적 교육이라는 범주로 이해할 때, 교육이란 인간을 기르고, 가르치고, 성숙시킨다는 목표에서는 어떠한 인간상을 지향해야하는가는 자명하다. 그리고 교육은 교육자체로서 존중되어야 하고 정치 논리나 이데올로기적 담론에서 벗어나야하며, 가치중립적이어야 하고 그것이 법․제도적으로 보장되어야한다.
○ 사회통일교육이라는 개념도 상당히 편의적이다. 교육하는 장소에 따라 학교 통일교육과 학교 이외를 대체적로 사회통일교육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 개념에 대한 정의를 명쾌히 정립할 수도 없고 규정된 개념도 현재는 없다고 본다. 통일교육이라는 개념부터 대부분이 통일교육지원법상의 법률적 정의에서 차용하고 있고, 그것이 사회과학적으로 합의되거나 검증된 내용이 아니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통일교육이라는 정의는 법룰 상 필요에 따라 용어에 대한 법룰적 정의라는 것에 유의할 필요가 있겠다. 오히려 통일교육을 말할 때 교육학적 개념과 교육기본법에서의 전인적 차원의 교육이란 개념에 통일이라는 민족적 국가적 과제에 대해 가르치는 것으로 통칭하는 것이 우선은 더 유익할 것이다. 때문에 이참에 통일교육의 개념부터 시작하여 이와 관련된 내용에 대해 심도 있는 연구가 필요하다고 본다.
○ 앞서 지적한바 있듯이 사회통일이라고 여타 통일교육과 특별히 내용적으로도 상이 하지 않다. 편의적 구분이라고 재차 언급하고자 한다. 그리고 사회통일교육이 반드시 성인을 대상으로도 하지도 않는다.
사진자료 : 백석중학교 통일교육 CA반 수업 @ 통일교육문화원
2. 사회통일교육의 실태
○ 언급했듯이 사회통일개념은 명확한 개념이 아니지만 논리 전개상 사회통일이라고 통칭하고, 사회통일교육의 실태를 살펴본다면 사회통일교육은 비교적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다. 예컨대, 통일교육협의회에서 지원 형태로 이루어지는 사업 등도 사회통일교육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세미나, 포럼, 토론회, 현장연수, 경지대회 등이 그것에 포함된다고 할 수 있겠다. 다만 문제가 되는 것은 교육의 체계화와 지속성이다. 그리고 학교통일교육과의 연계도 중요하지만 사회통일교육이 지방자치단체와의 연대와 협력이 모색되었으면 한다. 때문에 이와 같은 사업의 효율을 높이고 지속성을 담보해내기 위하여 지방자치단체와의 조례제정을 통해 양질의 교육프로그램과 예산의 확보를 줄기차게 주장하고 있다. 모법은 통일교육지원법이다.
○ 국내적 환경 변화로서 다문화사회로의 이행 가속화를 들고 있다. 탈북자만 하더라도 1만 4천명이고 코시안이 전체 아동 인구의 약 0.5% 이고 앞으로 이주노동자 등도 그 속도는 탄력이 붙을 전망이다. 이러하듯 우리 사회는 다문화주의(multiculturalism) 이미 진입하였고 특히 이른바 글로벌 시대의 민족주의가 강조되는 어떤 형태의 교육도 절제되어야 할 것이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사회통일교육분야에서 다문화 교육을 포함해야하는가 그것이 대안적인가에 대해서는 좀 더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왜냐하면 통일문제는 민족의 문제인 것 만은 분명하고 민족이 단위가 되는 것이 불가피한 것이다. 그런데 다문화 교육은 사회통합또는 사회문화통합 차원의 교육 즉 ‘통합교육’이라고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통일이라는 개념과 통합이라는 개념도 각각이 다른 것이다.
3. 맺는 글
○ 통일교육은 이른바 학교통일교육이든 사회통일교육이든 정부가 실시하는 통일교육이든 아직은 제도화되지 못하거나 제도화의 정도가 미미한 수준에 그치고 있다. 제도의 안정적 정착이 통일교육의 관건으로 볼 때 이를 저해하는 요소는 역시 냉전적 혹은 담론적 통일 논의이고 아울러 통일문제의 특성상 정치 논리에 휘둘리거나 정권안보 논리로 함몰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통일교육지원법을 가칭 ‘통일교육기본법’으로 개정하고 연간 통일교육 계획의 의 수립과 집행 절차를 엄격히 하는 등의 법제도적 보완 작업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아울러 국민들의 통일에 대한 의식이 점차적으로 높아 질 때 통일교육의 질적 양적 변화와 함께 통일 한국의 모습을 선명하게 드러낼 수 있을 것이다. 이 일에 민간통일운동단체의 분발과 역할을 기대해 본다.
- 이 글은 통일교육협의회 통일교육연구소가 주최한 '한반도 주변 환경 변화에 따른 통일교육의 진단과 전망' 이란 세미나에서 '남북관계 및 국내 변화에 따른 사회통일교육의 대안' (발표자 김국현)의 주제 밮표에 대한 토론문 요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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