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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핵 문제 해결, 9·19와 2·13에 있다'

 - 교회와 함께 나누는 통일 이야기-


달갑지는 않지만, 북한 핵 문제가 불거진 지도 20년이 다 되어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북한이 핵과 처음으로 인연을 맺은 것은 1956년 소련과의 '핵에너지 평화 이용 협정'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북한은 자국 인재를 모스크바로 유학 보내 핵물리학을 배우게 하고, 이후로는 김책공대 등에서 핵과학자를 양성하였다. 1960년대 소련의 도움으로 연구용 핵반응로를 건설하는 정도였는데, 1970년대에는 자체 기술로 핵반응로를 건설하여 운전하였다. 1985년부터는 영변에 '사용 후 핵연료 봉'에서 플루토늄을 추출하는 실험실을 만들고, 핵 관련 연구를 적극적으로 추진하여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이러하듯이 대체로 핵개발 과정은 여타 국가들도 유사한 경로를 밟는다. 또한 이것은 대개 기존 핵보유국의 기술을 통해 암암리에 핵개발을 추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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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에서의 6자회담


북한 핵 문제가 본격적으로 대두한 것은 1993년 무렵이다. 1990년 냉전 체제가 막을 내리고, 소련이 해체되면서 구소련 지역인 우크라이나 등지의 핵이 제3국으로 유출될 우려가 있었다. 때문에 IAEA는 북한의 영변 지역 핵 시설에 대해 특별 사찰을 요구하였다. 하지만 북한은 사찰 방법을 두고 반발했으며, 결국 NPT 탈퇴를 선언하고, 미국은 핵 의심 시설에 대해 한때 군사적 공격을 검토한 바 있다. 이런 우여곡절 속에 카터 전 대통령의 중재로 가까스로 사태의 고비를 넘기고 1994년 비로소 '제네바 합의'에 이르게 되었다. 이것이 제1차 북핵 위기의 대체적인 전말이다.

제 2차 북핵 위기는 2001년 부시 정부가 들어서자 충격적인 9·11 사태가 발생하였고,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전쟁까지 터졌다. 당시 부시 정부는 북한을 이란, 이라크와 함께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네오콘을 중심으로 본격적인 대북 강경책을 펴게 된다. 북한은 탈냉전 이후 사회주의권의 붕괴로 큰 타격을 받은 데다 9·11 테러로 부시 정부의 대북 강경 정책이 본격화되자 체제 붕괴에 대한 두려움이 커졌다. 1994년 체결한 제네바합의도 지지부진하고 KEDO 집행이사회가 중유 공급을 중단하는 등 압박이 거세지자 다시 NPT 탈퇴를 선언하였다. 이것이 제2차 북핵 위기의 대략이다.

북한의 핵카드 게임은 미국과 남한에 대한 압박과 대화라는 양면을 모두 활용하였다. 그러나 2006년 5월과 7월에는 강한 공격모드로 미사일 시험 발사와 핵실험을 감행하였고, 올해 2차 핵실험과 위성 로켓까지 발사한 상태이다. 이러한 일련의 북한 핵과 관련한 문제를 타개하기 위한 대화가 바로 '6자회담'이고, 2003년 8월 중국 베이징에서 최초로 개최되었다. 지난주가 6자회담에서 '9·19 공동 성명'이 채택된 지 4주년이다. 하지만 9·19 공동 성명은 국내외적으로 홀대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외면당하고 있다. 9·19 공동 성명은 남북을 포함하여 주변 4대 강국이 한반도의 통일과 동북아시아의 평화 정착을 위해 합의한 역사적인 문서이다. '북한은 핵을 폐기하고 미국은 북한을 침공하지 않는다. 북한과 미국은 관계를 정상화하고, 일본과도 관계 정상화를 이룬다. 6자는 에너지, 교역 투자 분야를 비롯한 경제 협력에 합의하고, 동북아시아의 항구적 평화 체제를 구축한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이것이 BDA 문제라는 복병을 한때 만나기도 했으나 가까스로 해결하고 9·19 공동 성명에 이어 이를 이행하기 위한 초기 조치라는 명칭의 소위 2·13 합의가 2007년 2월 13일에 채택되었다. 이 합의는 9·19 공동 성명을 좀 더 구체화한 것으로, '행동 대 행동'이라는 원칙에 입각하여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그리고 통일에 대해 단계적이고 보다 명확한 로드맵을 제시한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이렇게 중요한 합의가 현재 핵사찰 방법에 대한 시비와 각자가 처한 국내외의 정치적 변수로 인해 지체되고 있다.

근년에는 특히 남북 관계가 원만하지 못한 상황이고 북핵 문제의 장기화로 9·19 공동 성명과 2·13 합의의 빛이 바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중요성을 다시금 새기고 이를 적극 실천해나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칫 영원히 평화통일의 기회를 남북 모두가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9·19 공동 선언과 2·13 합의는 한반도 통일과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실현하는 관건임에 틀림없다. 양 합의에 6·15와 10·4 선언 그리고 남북 기본 합의서 등을 서로 보완하고 협력하면 반드시 통일의 대업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때문에 북한과 한반도의 비핵화 실현으로 남북 간의 '종전 선언'과 '평화 협정'이 이루어지고, 동북아시아 다자 안보 체제가 구축되어 항구적인 평화가 올 날도 그리 멀지 않았다. 이것은 6자가 공히 합의한 약속이다, 특히 부시 전 대통령도 재임 당시 이를 지지하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오바마 정부 역시 클린턴 정부 시절의 대북 정책 기조를 따를 것이고, 커트 캠벨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는 이미 '포괄적 패키지'를 언급하며 상당 부분 정책이 가시화되고 있다.

덧붙이건대, 이즈음에서 남북 간의 공조를 빼놓아서는 안 된다. 6자의 틀 속에서 국제적으로 협력하되, 분단 당사자이자 앞으로 함께 살아야 할 남북 간의 공조가 중요한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특히 이번 이산가족 상봉을 계기로 그동안 경색되었던 남북 관계가 풀리고 화해와 협력 그리고 공조가 이루어지길 간절히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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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에 대해 내가 가져야 하는 최소한의 책임을 다 하고자 하고
북한과 통일문제에 대한 관심과 참여, 그리고 작은 봉사를 공동체와 함께
일구어 나가고자 그저 소박함으로 하루을 일하고자 한다.
2009/09/28 22:15 2009/09/28 22:15
Posted by 김기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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