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5남북공동선언'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0/06/05 6.15 공동선언 10주년을 맞아
  2. 2008/10/02 상생과 공영을 위한 출발점

                            
                                 6·15 공동선언의 의의


올해로 탈냉전 시대를 맞은 지 20년이 된다. 20년 전, 동유럽이 붕괴되고 소련이 해체되었으며 독일이 통일을 이루었다. 이 어간에 동북아시아 지역에서는 한국과 소련 그리고 한국과 중국의 수교가 이루어 졌다. 과거에 서로 적대국이고 공산주의의 종주국이었던 나라와 국교를 정상화한 것이다. 따라서 1990년대가 세계 차원에서 냉전의 종언을 고했다면, 2000년 6월은 한반도에서 탈냉전이 이루어졌고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6.15 공동선언이다.

6.15 공동선언은 탈냉전 이후 남북의 정상이 최초로 만나 통일의 기본적인 방안과 경제협력 등을 합의한 역사적인 합의다. 또한 이것은 1972년 이후락, 김영주의 '7.4 공동성명'과 1991년 정원식, 연형묵의 '남북기본합의서'의 정신을 계승하였다. 이제 그 선언이 10주년을 맞게 되었다.

6.15 공동선언은 일반인들에게는 다소 생소할 수 있다. 6.15 공동선언의 여러 가지 의의 중에서 몇 가지만 꼽아 보겠다. 첫째로 합의형 통일을 지향하고 있다. 6.15 공동선언은 무력이나, 흡수, 신탁, 합병 등의 통일이 아닌 남북 간 상호 대화를 통하여 평화적인 통일을 이룬다는 것이다. 둘째, 단계적이고 점진적인 통일을 추구한다. 과거 북한이 주장했던 정치적 결단에 의한 통일이 아니라 통일의 과정을 비교적 길게 상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화해 협력을 통해 상호간의 신뢰를 도모하고 나아가서는 남북연합 단계, 자치 정부의 권한 보장, 그리고 평화통일 등의 구체적인 로드맵을 제시하고 있다. 이것은 예멘의 사례와 같이 통일의 과정에서 돌발적인 사태나 시행착오를 방지하고 원만하게 통일을 이루고자 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궁극에는 자유민주의 통일을 이루는 것이다. 1991년 김일성은 ‘남과 북이 누가 누구를 먹고 먹히는 통일’이 아니라 평화적인 통일을 이루되, ‘제도의 통일은 후대에 맡기자’고 하였다. 그러나 6.15 공선언선은 제도적 통일을 자유민주주의 통일로 못 박고 있다고 하겠다.

논란이 있었던 6.15 공동선언 제 2항은, 결코 북한이 주장하는 급격한 통일이나 연방제 통일을 이루려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1990년 이후 탈냉전이라는 시대적 변화와 함께 북한 내부의 정치, 경제적 상황 등 여러 가지 여건을 고려한다면, 남한의 국가연합제에 근접한 통일 방식에 동의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따라서 이 모두를 종합해 보건대 결국은 자유민주주의 통일로 귀결된다. 6.15 공동선언의 내용과 취지를 간략히 짚어 보면 다음과 같다.

 전문을 생략하고,
1.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가기로 하였다.

6.15 공동선언은 자주적 통일의 원칙, 통일방안에 대한 기본적인 차원에서의 공통점 인정, 남북간의 인도적 문제 해결, 경제협력과 사회문화교류, 당국간 대화의 제도화 그리고 김정일의 답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선 자주적 통일(우리민족끼리)에 대해 논란이 있는데, 이는 미국과 소련을 비롯하여 남북한이 극한 대립을 하던 이른바 냉전시대의 네가티브적이고 배타적인 ‘자주’가 아니라 1990년 이후 탈냉전 시대에 걸맞은 포지티브하고 국제협력을 배재하지 않는 ‘자주’를 말하는 것이다. 특히 한반도 주변 국가들과의 협력을 통한 자주적 통일을 천명한 것이므로 7.4 공동선언보다 진일보한 것이라 하겠다.

2.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하였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6.15 공동선언 2항이 가장 큰 오해와 논란을 불러 일으켰는데, 기본적으로 우리의 국가연합제에 더 가까운 통일 방안임에 틀림없다. 북한은 1990년 이후 과거 경직된 연방제에서 유연한 태도를 보였고, 또 자치정부의 권한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입장으로 선회하였다. 그래서 연방제라고 하면 과거의 주한미군 철수, 보안법 철폐, 한반도의 중립화로 적화통일의 길을 열어 주었다는 논리는 기우이거나 이해의 부족이다. 그리고 오늘날과 같은 탈냉전, 글로벌이라는 국제정치 속에서 공산주의로 적화통일을 이룬다는 것은 넌센스에 가깝다. 또 연방제를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경우가 있는데, 연방제 국가의 대표적인 나라가 미국이다.

북한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를 간단히 설명할 수는 없다. 대략적으로는, 남북한 자치정부의 권한을 강화하고, 일정 기간 두 체제를 인정하자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과거 고려연방제에서 정치적 결단에 의한 비교적 빠른 시일에 이루는 통일보다는 오히려 점진적인 통일로 입장을 바꾼 것으로 이해 할 수 있다. 그만큼 북한이 수세적인 입장에 놓여 있다. 그리고 우리의 ‘국가연합제안’은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대통령 시절의 통일을 방안을 계승하였고, 특히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을 중시하고 있다. 때문에 현 정부도 이렇게 역사적으로 이어온 통일방안을 존중하고 계승하고 있다.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은 3단계로써 1단계 화해·협력단계, 2단계 남북연합단계, 3단계 1민족 1국가 통일국가 완성단계이다. 이명박 정부는 이를 계승하고 있다. ( 이승만에서 현재까지의 각각의 통일방안이 기본적인 틀이 유사하고 그 정신을 계승하였기 때문에 지면상 자세한 내용은 생략한다)

3. 남과 북은 올해 8·15에 즈음하여 흩어진 가족, 친척방문단을 교환하며 비전향장기수 문제를 해결하는 등 인도적 문제를 조속히 풀어 나가기로 하였다.

분단의 아픔 중에서 가장 큰 고통은 가족을 만나지 못하는 것이다. 설이나 추석과 같은 명절이 아니더라도 평소에도 생사조차 확인할 수 없는 고통은 가슴에 한이 된다. 그리고 이 조항에서는 전쟁과 관련된 장기수, 군국포로 문제의 해결도 포함되어 있다 할 것이다.

4. 남과 북은 경제협력을 통하여 민족경제를 균형적으로 발전시키고 사회·문화·체육·보건·환경 등 제반 분야의 협력과 교류를 활성화하여 서로의 신뢰를 다져 나가기로 하였다.

남북한의 경제협력은 우선 정경분리의 원칙을 지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정치적 변수로 인해 경제협력을 원만하게 추진할 수 없다. 남한의 자본과 기술을 북한의 노동력과 자원을 결합시켜 상호 이익을 창출하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그 대표적인 경협이 개성공단이라 할 수 있다. 독일의 경우에도 ‘동서독기본조약’을 통해 경제협력은 물론 사회문화협력까지 강화해 나갔고, 그러한 기반위에 마침내 통일을 이루었다. 그리고 교회 등지에서 인도적 지원을 통해 동독의 빈곤문제의 해결을 도왔는데, 우리도 북한의 빈곤 문제에 도움을 준 다는 것이다.

5. 남과 북은 이상과 같은 합의사항을 조속히 실천에 옮기기 위하여 이른 시일 안에 당국 사이의 대화를 개최하기로 하였다.

6.15 공동선언 이후, 남북 당국 간 회담은 예전에 비해 급격히 늘어났다. 장관급 회담, 군장성급회담, 경제관련 회담, 남북총리급 회담 등을 비롯하여 여러 차원에서 회담이 개최되었다.

전문과 5개 조항 외에 ‘김대중 대통령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서울을 방문하도록 정중히 초청하였으며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앞으로 적절한 시기에 서울을 방문하기로 하였다.’ 하지만 어쨌건 북한이 이를 이행하지 않는 것은 매우 유감이 아닐 수 없다. 지금까지 6.15 공동선언 10주년을 맞이하면서 간략히 그 의의와 내용을 살펴보았다. 조금이나마 통일문제에 도움이 되었으면 하고, 우리 세대에 자유민주주의로 평화통일이 이루어 질 것을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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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에 대해 내가 가져야 하는 최소한의 책임을 다 하고자 하고
북한과 통일문제에 대한 관심과 참여, 그리고 작은 봉사를 공동체와 함께
일구어 나가고자 그저 소박함으로 하루을 일하고자 한다.
2010/06/05 19:39 2010/06/05 19:39
Posted by 김기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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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문제, 균형과 접점이 필요하다
2008년 09월 10일 (수) 김기환 webmaster@yongin21.co.kr

   
▲ 김기환(통일교육문화원 평화교육센터 소장, 본지객원 논설위원)
우리사회는 미국과 북한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분열과 대립이 여전히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우선 친미 반미라는 분열구조를 살펴보자. 한쪽은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 호의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고 또 한쪽은 지나치게 적대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다.

북한을 보는 시각도 마찬가지이다. 이른바 친북 좌파라 칭하는 세력은 통일에 대한 시각을 주로 남북관계의 발전이라는 측면과 화해와 협력, 그리고 평화를 강조하는 차원에서 접근한다. 반면 반북 또는 이른바 보수라 칭하는 세력은 북한을 대화의 상대나 교류협력의 상대로는 여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역사 인식은 그 사람의 지적 능력이나 환경 등에 따라 다를 수 있다. 그러나 반미든 친미든 미국에 대한 올바른 지식과 이해를 갖고 판단하기보다는 양 부류 모두 대단히 감정적으로 바라본다는 것이다. 거의 소통이 되지 않을 정도이고 혐오와 증오를 넘어서는 극한적 관계에 이르기도 한다.

지난 8월 부시 대통령의 방한을 두고서 서울 한복판 시청 앞 광장에서 펼쳐진 환영과 반대의 집회가 오늘날 대한민국의 미국에 대한 시각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슬픈 초상이었다.

북한에 대해서는 더 말할 나위 없다. 지난 10여년 동안의 대북포용정책을 둘러싸고 ‘좌파 빨갱이’란 용어가 언론 등에서 서슴없이 나온 지 오래고 ‘수구꼴통 반통일’ 전쟁세력이라는 용어도 회자된다. 지난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비판은 크게 퍼주기와 끌려다는 비판이다.

또 한 가지는 반미라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통일과 북한문제, 그리고 한미관계는 현대사에서 지울래야 지울 수 없는 역사적 멍에와도 같다. 이러한 문제를 보다 이성적으로 접근하고 양극단으로 나눠진 보수 진보, 좌파 우파를 어떻게 화합하는냐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감정보다는 전략을 마련하고 머지않아 다가올 통일을 준비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의 미래는 비극의 역사 속으로 다시 되풀이 되지 않는 다는 보장이 없다.

우선 미국에 대한 시각을 가급적 균형감을 갖도록 노력하자. 미국은 우리의 우방이면서 때로는 강자의 논리를 내세워 일방적 공세를 펼 때도 있었다는 것이다.

기본적으로는 우방으로서의 지원과 협조가 있었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자국의 이해와 국제 정치의 역학관계를 교묘히 이용하는 측면이 역사적으로 존재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서로가 일보씩 양보하여 절대적 친미도 절대적 반미도 아닌 시각에서 균형과 접점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북한은 우리와 전쟁을 벌였다. 수많은 사람이 죽고 다쳤다. 다시는 있어서는 안 될 역사적 비극이다. 아마도 지금 이 순간에도 전쟁의 공포와 상처로 통한의 눈물과 절망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전쟁이 발발한 지 58년이 지나고 있다. 산천초목이 바뀌어도 여러 번이다. 분명한 것은 우리의 다음에는 동족간의 전쟁이 있게 해서는 절대로 안 될 것이다. 그러기에 남북간의 화해협력과 평화를, 그리고 통일을 강조하여 접근하는 사람도 이해하고 전쟁 통에 가족을 잃고 아파하면서 북한을 증오하고 대화를 회피하려는 사람도 이해하자.

그래서 서로가 민족 분단의 극복과 평화통일이라는 대승적이고 민족 염원의 차원에서 조금씩 양보하고 역지사지 한다면 하나로 화합과 통합을 이루지 못할 이유가 없다.

또한 북한에 퍼준다는 사람도, 끌려 다닌 다고 비판하는 사람도, 비록 우리가 총칼로 서로에게 비수를 꽂았고 지금도 철조망 너머로 눈을 부라리고 있지만 화해와 교류협력하자는 사람도 이해하자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미국을 오직 은혜의 나라라고만 하는 사람도 미국을 오직 힘으로 밀어부치며 깡패 나라라고 반미를 부르짖는 사람도 이해하면 어떨까.

귄터그라스의 말처럼 우리가 서로 지나치게 감정만 앞세우기보다 한반도의 반쪽인 남쪽 하나만이라도 서로 화합하고 국민간의 일체감을 속히 회복했으면 한다. 그리고 차분히 통일에 대해 더 면밀한 전략을 어떻게 세울 것인가를 다함께 고민하고 언급했듯이 곧 다가올 통일에 대해 구체적으로 준비하는 그런 나라가 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우리가 세계 12위의 경제대국이고 올림픽과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치른 저력 있는 국민이 아닌가. 그래서 통일문제에 대해서만큼은 여야와 정파, 종교와 개인의 성향을 떠나 큰 형님 같은 넉넉한 마음과 여유를 가져보자. 밉지만 동생이 지금 당장 많이 힘들어 하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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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교육문화원은 2002년 1월 개원
2002년 3월에 비영리 민간단체 등록(통일부 제31호 : 승인일 2002.3.28)
2004년 11월 사단법인 등록(통일부 제 141호 : 승인일 2004.11.23)
2005년 7월15일 재경부 지정기부금단체로 등록되었습니다.
2008/10/02 00:41 2008/10/02 00:41
Posted by 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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